저런 것들이 시를 쓴다고
저런 것들이 시를 쓴다고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3.05.23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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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시 창작방에 시인들이 모여들었다. 한 친구가 봄이 되어선지 자꾸 산에 가고 싶다고 말한 직후였을 것이다. 진달래는 꽃부터 피던데, 철쭉도 그런가를 물어왔다.

4월이면 내가 사는 아파트 앞 화단에 빽빽하게 피어나는 철쭉을 봐왔던 터, 기억의 회로에 저장된 철쭉에는 온통 붉은 꽃들뿐, 파란 잎은 한 잎도 눈에 띄지 않았다. 진달래처럼 꽃이 먼저임은 확신 쪽으로 기울었지만, 질문하는 의도가 순간 머릿속에 교란을 일으켜서

“아마도 그럴걸”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관찰에 대해 열을 올리는 강사의 입에서 튀어나올 말이 아니지 않는가?

“아니예요, 진달래와 철쭉의 다른 점은 잎이 먼저인가 꽃이 먼저인가를 본다는데요?”

성급한 친구는 네이버의 창을 열고 검색을 해보더니 “야, 내가 맞았다”고 환호성을 지른다. 산에 피고 뜰에 피는 것, 색깔이 진하고 옅은 것 정도로 구분했던 나는 관찰이 미흡했다는 벌로 그날 시인들의 점심을 책임져야 했다.

시를 쓰려면 관찰이 먼저다. 더불어 많이 읽고 많이 써보는 것, 시인이 되려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일러주는 말이다. 깊게 보아야 한다는 관찰에 대해 귀가 짓무르도록 들었고 나 또한 후배들에게 거듭거듭 강조하는 말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라. 그리고 눈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에서 배워라.'

르네상스 시절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일갈은 모든 예술에 통용되는 진리이기도 하지만 특히 우리처럼 시를 쓰기 위해서라면, 관찰은 필수 항목인 것이다.

한 달 열심히 일한 월급에서 밥도 나오고 등록금도 나오듯 문지방이 삼천리이듯 알레고리도 메타포도 사물이나 현상을 자세히 깊게 살펴보는 관찰에서 나오는 것임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인데도 주마간산의 인식과 습관은 굳어질 대로 굳어져 한심할 때가 많고 많다.

`달개비떼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꽃 하나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황동규-

달개비 꽃, 닭의 장풀이라고도 하는 이 풀꽃은 밭둑이나 개울가에서 흔하게 보아왔던 꽃이다. 이름 모를 낯익은 동네 사람 같은 꽃, 꽃 이름을 시를 읽고 알게 된 것이다.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는 것도 시를 읽은 후에야 새삼스럽게 알 수 있었으니 나의 주마간산 사고방식의 산물인 부끄러움을 깨닫는 일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즈음일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황동규의 이 시를 읽고 한달음에 달려가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는> 달개비꽃을 보면서 <내가 한발 늦었다>고 한탄했다던가. 그런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자책하는 시를 썼다.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애기똥풀도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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