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품바가 온다
5월, 품바가 온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5.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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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계절이 무르녹는 5월이다. 산과 들에 피어난 꽃들의 색도 완연히 바뀌었다. 화려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서 존재감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붉게 타오르거나, 노랗게 설레발을 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온화한 빛으로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낸다. 주렁주렁 열매를 단 듯, 꽃송이들이 무겁게 늘어진 아카시아. 꽃바구니를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담상담상 피어있는 찔레꽃. 폭설이라도 내린 걸까. 화사함을 자랑하는 이팝나무, 사랑스러운 별 모양의 꽃송이를 가지마다 얹은 산딸 나무, 이 모두가 5월을 사랑하는 꽃들이다. 이상하게도 이맘때 피는 꽃들은 모두 향기를 품었다.

축제다. 5월의 산과 들에서 꽃향기로 사람을 매혹한다면, 이곳 음성에서는 품바축제가 사람을 달뜨게 만든다. 해마다 5월이면 음성은 전국에서 모여든 품바들로 시내가 들썩인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2년 동안은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아쉬움을 달래다 작년부터 축제가 재개 되었다. 그나마 작년에 열렸던 품바 축제는 아무래도 코로나 감염의 위험성으로 인해 축소해서 열린 축제였다. 올해는 예전 그 이상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설물의 규모와 프로그램의 다양성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하도와 천변의 공연장은 무대설치로 부산하고, 행사장 대로변도 새롭게 정비가 끝났다. 주 무대인 설성 공원에는 천막과 공연 시설물로 손님을 맞을 준비도 마무리가 다 되어 간다.

품바 축제가 열린 게 된 것은 걸인들의 성자 최귀동 할아버지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함이다. 최귀동 할아버지의 삶을 알린 사람은 꽃동네 설립자 오웅진 신부였다. 오웅진 신부가 최귀동 할아버지를 만난 것은 1976년 무극성당 부임 신부로 부임한지 며칠 후였다. 성당 앞길에서 동냥밥을 얻어 움막으로 돌아가는 할아버지 모습을 발견한 오웅진 신부는 그 뒤를 따라 가 보았다. 할아버지를 따라 간 그곳은 용담산 밑 움막이었는데 당시 18명의 걸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장애인, 중환자 등 동냥조차 못하는 걸인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동냥해온 밥을 그들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오웅진 신부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 후 오웅진 신부는 주머닛돈을 털어 시멘트 한 포를 사고 냇가에서 모래를 퍼와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것이 꽃동네의 시작이었다. 최귀동 할아버지는 자신의 안구를 26세의 청년에게 기증을 하고 1990년 1월 4일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최귀동 할아버지의 고귀한 삶을 잊지 않기 위해 음성군에서는 2000년부터 지금까지 `품바축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품바축제'는 음성군만의 축제가 아닌 듯하다. 명실공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축제장에서는 외국인도 내국인도 모두가 하나가 되어 즐긴다. 다른 곳에서는 걸인의 옷이 구저분하다 여겨 부끄러워 걸쳐볼 엄두도 못 내지만 이곳에서만은 이보다 더 멋지고 화려한 옷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도나도 찢어지고 꿰맨 걸인의 옷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기 바쁘다. 어떤 사람은 집에서 자신이 만든 누더기 옷을 가져와 입고는 신나게 뽐내면서 다닌다. 찢어졌어도 괜찮고, 얼기설기 꿰매도 멋지기만 하다.

축제장에서는 모두가 즐겁다. 웃지 않는 이가 없다. 걸인의 옷을 입었음에도 마음만은 부자다. 그도 모자라 사람들은 얼굴을 지저분하게 만들기 위해 미술협회 부스의 긴 줄 앞에서도 벙글벙글 웃느라 바쁘다. 누가 더 남루한 옷을 입었는지를 겨루는 무대인 듯 착각이 들기도 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좋다. 나눌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축제, 그것이 `품바축제'가 바라는 진정한 모습일 터이다.

은은한 꽃향기로 사람을 반기는 5월의 나무들처럼, `품바축제'는 사람들의 온기로 넉넉하게 이 계절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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