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걸렸다
이십 년 걸렸다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3.05.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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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어머님을 모시고 한의원에 왔다. 오래된 듯 낡은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밖을 내다본다. 길 건너 건널목에 한 노인이 서 있다. 철 지난 남루한 잠바를 걸치고 온통 하얀 머리칼에 한 손에는 지팡이가 들려 있다. 몸을 지탱하는 지팡이의 노력은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금세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고 사람들이 길을 건너기 시작한다. 바삐 내딛는 젊은이들 사이로 점점 뒤처지고 있는 노인의 걸음, 세상의 속도는 노인이 살기엔 너무도 빠르다.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함께 걸어주면 좋으련만 어느새 `옆'보다는 `앞'에 집중하는 시절이 되었는가.

어머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다. 의사 앞에 앉아 내미는 손목 위로 맥이 거의 잡히지 않는다는 의사의 한마디에 측은지심이 인다. 또 한 뼘 늙으셨구나. 몇 년 전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집을 지키며 사시는 동안 대쪽처럼 꼿꼿했던 허리도 많이 굽었다. 가능한 한 웬만한 일은 스스로 해결하며 지금까지 잘 버텨내셨는데 이젠 그 한계점에 도달하신 듯하다.

한의원을 나와 근처 공원에 앉아 함께 봄볕을 쬔다. 한껏 벙글어진 목련이 화사하니 눈을 돌려 바라보는 어디든 봄으로 가득하다. 어머님이 조근조근 옛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철쭉이 흐드러진 사월에 가마를 타고 시집을 오셨단다. 음식도 쉬지 않고 시원하니 날이 아주 좋았다며 모처럼 환하게 웃는다. 어머님과 이렇게 마주 앉아 별일 아닌 이야기로 편안하게 웃기까지 이십 년이 걸렸다.

처음 시어른들께 인사 가던 날이 떠오른다. 어머님은 시댁과 가까운 거리에 신혼집을 마련해 줄 터이니 주말마다 함께 성당을 다닐 수 있냐 물으셨다. 사랑에 눈이 멀어 할 수 있다고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결혼 후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매주 시부모님과 함께 성당을 다녀오고 주말 내내 함께했다. 살림의 대가셨던 어머님 뒤에서 이것저것 삶의 지혜를 얻은 대신 일상의 불편함도 더불어 얻었다. 전쟁처럼 평일을 살았으니 그저 주말만이라도 편하게 쉬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올라왔다. 남편을 채근했다. 성당만 다녀오고 각자 집에서 쉬는 걸 말씀드려 보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분명히 한결같은 남편이 좋아 결혼했는데 때로는 변하지 않는 남편이 힘들기도 했다.

어느 해 겨울 남편이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났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시부모님은 그것을 계기로 남편 직장 가까이 이사를 하라고 했다. 두말없이 음성으로 왔다. 그리고 며느리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만 하고 살았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우리의 고부 사이는 갈등도, 훈풍도 없이 그저 그런 관계가 되고 말았다.

누구든 직접 경험해 보지 않고는 아무도 모른다. 내 아이가 자라서 품을 떠나 객지에 있을 때 비로소 나는 어머님의 마음을 이해했다. 아이가 내려온다고 하면 그 전날부터 마음이 들뜨곤 한다. 평소엔 하지도 않는 음식솜씨를 부리고 절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 시절 어머님도 그리했을 것이다. 주말이 되면 다 같이 모여 밥 먹는 일을 큰 낙으로 여겼다는 당신은 우리를 보내고 많이 허전했을 것이다. 난 그때 어머니께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다정하게 자주 손잡아 드리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이십 년이 걸렸지만, 앞으로는 어머님과 나의 사이가 오늘처럼 이렇게 봄날 만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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