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난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난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2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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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헤겔은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갯짓을 시작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어둠이 찾아오고 난 뒤에야 활동을 시작하는 올빼미가 헤겔에게는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상징이며 철학인 셈인데, 우리가 은유하는 어둠에 대한 일차적 관념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흔히 대낮에 사유하고 인식하며 행동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만 전부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보이는 것은 극히 일부분 일뿐, 가시거리를 벗어난 세계의 오묘한 이치는 한가위 꽉찬 달을 보며 소원을 빌게 되는 절박함과 오히려 가깝다.

대개 모든 진실 혹은 진리는 한 시대나 사건의 끝 언저리에서 본질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닷새간의 달콤했던 추석 연휴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순환의 고리에 몸을 실으면서 다시 미네르바의 올빼미를 생각한다.

혈연위주의 농업생산 중심에서 이미 훨씬 벗어난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지금쯤의 고향은 어쩌면 우리에게 낯설은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직장상사와 동료 혹은 거래처의 눈치가 서슬퍼렇기만 한 삶의 무게에서 그저 1년에 한 두 번 다녀오는 고향은 단순한 통과의식에 그치는 일이 되고 말았다.

먹고 사는 일을 농업중심의 노동구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던 예전에는 고향과 부모형제가 생명선을 유지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가부장적 가정의 질서와 충효를 기본으로 하는 유교적 전통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런 공동체적 삶의 방식이 전부였던 그 시절 눈에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음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개인주의적 삶의 양식과 다양한 생산성이 적용되는 현대의 산업구조에서는 보이는 것만이 전부로 인식되고 있을 뿐, 본질의 의미는 갈수록 엷어지고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하는 현실에서 언제 우리가 마음 편하게 하늘을 우러러볼 시간이 있었는가.

눈만 뜨면 아이들 교육비 걱정에 노후걱정, 살집 마련 걱정이 이어지는 치열함에서 우리가 언제 여유롭게 밤을 사색할 수 있었던가.

초롱초롱한 별빛을 모처럼 대하면서 돌아오는 길고 긴 현실로의 복귀.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이미 아기의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인 시골 마을, 그 골목 구석구석 새겨 있는 추억은 가슴에만 남은 채 세대가 단절되는 시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생생함도 애틋함도 사라질 고향과, 어머님의 쭈그러진 젖가슴의 아련함도 현실에서 자취를 감추는데 세월의 흐름은 야속하다.

다만, 그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했던 한계를 극복하고 거친 현실에 도전하는 용기를 얻는 일은 고향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하여 한가위 밤하늘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빌었던 희망을 본질에서 찾아야 하며, 또한 그러면서 시공을 넘나드는 무한가치에 대한 인식 역시 어둠을 통해 전체를 찾는 미네르바의 날갯짓의 의미에서 파악해야 한다.

치유되지 않은 갈등은 그리움으로 치장하고 모자란 것 같은 갈증은 고향의 넉넉함으로 어루만지며 새로운 희망을 품을 일이다.

모든 사라질 것들에 대해서는 연민으로 힘을 얻을 것이며,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추억은 세상에 깊이를 더할 일이다.

진리와 진실은 항상 세상의 끝자락에 있나니,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눈을 부릅뜬 채로 새벽을 준비할 일이다.

고향 길을 돌이켜 보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늘 깨어 있으라.

본질을 생각하며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희망은 곧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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