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고 푸르러지길
푸르고 푸르러지길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05.1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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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시선 둘 곳이 어지러운 날이면 숲으로 들어간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궂으면 궂은 대로 채비를 차리고 들어간다. 해가 반짝 뜬 날엔 맑은 햇살 내음 있어 좋고, 비 오는 날이면 물기 젖은 땅 밟는 찰박거림이 있어 좋다. 여기서 좋다는 것은, 다섯 감각을 통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숲이 주는 안온함과 고독이 주는 안정감이다.

오롯이 나 홀로 차지하며 사유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기에 그런 곳에서 우린 안정감을 얻는다. 너무 많이 만나는 사람들, 너무 많이 접하는 인위적인 사물들, 너무 많이 들리는 소리 속에 있다 보면 몸과 마음이 아래로 아래로 침잠하거나 위로 위로 들뜨기 십상이다. 숲은 불안과 안정 사이에서 조율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아니, 그 이상을 준다.

그림책 `푸른 이야기/김혜진/모든요일그림책'에서도 주인공 `나'는 회색빛 도시에 물들어 마음이 온통 잿빛인 날엔 집을 나선다. 그리고 나무가 있는 수목원으로 들어간다. 갑갑하고 막막한 가슴을 안고 자분자분 땅을 밟고 풀과 꽃을 따라 걷다 보면 다섯 감각은 번잡해진다. 키 큰 나무들을 보며 저리 크도록 감내해야 했을 인내와 꿋꿋함을 알아채고, 너른 들판의 바람 주는 시원함을 느끼고, 바람이 싣고 온 향 속에서 꽃이 지녔을 화사함과 싱그러움을 느끼느라 번잡하다.

오감이 번잡해지면 그 덕에 몸과 마음은 평화를 찾는다. 휑한 잿빛 가슴에 온기와 향기를 담기에 그렇다. 느긋함을 담기에 그러하다. 숲에서는 용기와 든든함을 담을 수도 있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시간에 이끌린 빠듯한 일상을 보낼 때가 허다하다. 그럴때면 나를 이끄는 것이 나인지 시간인지 몰라 불안하다. 그러다 숲에 들어서면 용기가 생긴다. 시간과 속도와 거리를 나의 상태에 맞게 나의 의지로 조절할 용기가 생긴다.

`숲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나무와 나무가 모여 숲이 된다는 것을, 작은 나무 몇이서는 아름드리나무 혼자서는 절대 숲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숲밖에서는 몰랐다.' 정성수 시인의 숲이 되지 못한 나무의 한 대목이다.

초록이 주는 안정감은 나의 의식이 내면을 향하게 한다. 나무와 풀 그 속에서 나는 소리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름 모를 풀과 발치에 걸리는 작은 돌 하나 그 속에 있는 여리디여린 풀들의 존재는 나의 존재도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나를 믿을 수 있는 든든한 힘을 담는 공간이 되어 준다. 나의 믿음은 주변에 대한 믿음의 근원이 된다.

`숲이 되지 못한 나무 가슴에 귀를 대고 속울음소리를 듣고서 숲을 생각했다. 숲이 그리워 숲이 되고 싶어 울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를 보고 그때서야 알았다.-숲이 되지 못한 나무 중'

혼자가 아니라 `같이'할 힘을 숲에서 얻는다. 이완이 주는 탄력의 힘을 얻는다.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이다. 눈을 슬쩍 옆으로 돌리는 여유를 가져보자. 푸르디푸른 나무와 풀들이 있는 숲에서 마음과 몸이 푸르고 푸르러지는 호사를 누려보자! 그도 어렵다면 초록이 자라는 작은 화분이라도 창가에 놓는 것으로 나의 마음에 초록 점을 찍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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