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송령
석송령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5.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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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나무에 나이가 있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지만, 토지를 상속받았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의구심에 부자 나무를 만나러 길을 떠났다. 보고 싶은 생각이 달리는 차보다 앞서는데도 들려들려 가느라 느지막이 도착했다. 설상가상 비가 내려 설레는 마음만큼 머물지 못했다. 사방이 울타리라 교감도 나눌 수가 없다. 수박 겉핥듯 대충 보았는데도 사람으로 치면 키에 비해 몸집이 어찌나 우람한지 녹두장군의 몸집에다 물오른 청년이다. 보는 이마다 그 기백에 압도당할 기세다. 600을 살았다는데 늙지도 않았다.

자식이 없는 이수창 씨는 임종을 앞두고 본인 소유의 토지 6,600㎡를 소나무에 상속하고 세상을 떠났단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토지를 팔거나 양도하지 않고 자산으로 존속시키고 석송령이라 이름을 지어 등기하였단다. 많은 땅을 소유한 석송령 마음은 어떠할까?

나는 남편이 은퇴하던 날 제반사 모든 권리를 상속한다며 내 이름으로 만든 통장 하나를 준다. 돈이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는 출납통장이다. 부자가 되었다는 마음이 어찌나 크던지 천지가 내 것 같았다. 부자란 이런 거구나, 석송령도 이런 마음으로 지고 새고를 600년을 살았어도 이처럼 위풍당당하겠지. 돈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흥분시키는 줄을 예전에는 정말 몰랐다. 어려서는 필요한 만큼 어머니께서 주셨다. 자라서는 오빠와 장사해 금고를 내 마음대로 여닫았다. 결혼해 초창기는 사업하는 남편이라 생활비를 주는 대로 생활했다. 중년에 업종이 바뀌어 월급봉투가 있음에도 쭉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도 궁색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았지만, 부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젠 나도 석송령처럼 영역을 넓혀갈 수 있겠다는 기쁨에 가히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상속이란 상속자가 사망 후 효력이 발생하지만, 나는 남편이 살아있음에도 돈의 권한을 받았다. 생활비 통장 하나가 일러주는 이야기가 시시해 남들은 웃음 짓겠지만, 내 허락 없이는 1원도 꺼내 갈 수 없으니 상속이란 표현도 부자란 표현도 맞지 않나 싶다. 이렇듯 석송령도 위용(威容)을 갖춤은 부자라서 자기 땅이라서 마음 놓고 몸집을 키웠지, 싶다.

재산을 하사받은 부자 나무를 만나던 날 아침은 햇살이 온 누리를 품었었다. 정오가 되니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서너 시쯤에 비가 내린다. 눈 깜박한 것 같은데 빗줄기가 순백색의 눈으로 변했다. 겨우내 한파를 이겨내고 막 피어나는 샛노란 산수유꽃 위에 물을 잔뜩 머금은 눈송이가 앉으니 활짝 핀 목화송이로 변한다. 봄맞이로 바쁜 나뭇가지에도 두툼한 흰 외투를 입혀준다. 해 질 녘이 되니 산마루에 해님이 걸터앉아 살래살래 노을빛으로 손사랫짓한다. 식물은 변덕스러운 오늘의 날씨가 힘겨워 전능자에게 긍휼을 구하지 않겠나 싶지만, 나는 오늘의 날씨를 조물주의 선물이라고 좋아했다. 영국을 순례하던 여행자가 하루에 사계절을 보았다고 했다던데, 나도 오늘 사계절을 만난 셈이다.

저 석송령도 산마루 바위틈에서 비루하게 자랐으면 오늘의 날씨가 야속했겠지만, 재산을 지니고 있으니 오늘 같은 날씨를 수없이 맞이했음에도 늘 잎눈을 피우는 봄날처럼 위풍당당할 게다.

이천여 평 땅을 소유한 석송령 주소는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천연기념물 제294호' 옆에는 2세가 자라고 있다. 이처럼 대자연 속에 놓인 만물에는 재미있는 숨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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