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를 입은 그녀들
청바지를 입은 그녀들
  •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3.04.3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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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전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청바지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한다. 거울 앞에서 깨금발도 들어보고 아랫배에 힘을 주어 배를 쏙 들어가게 만들어 봐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게으른 것이 아니라 나잇살 때문이야'라며 불어난 허리사이즈를 스스로 위로하며 바지통이 헐렁한 청바지를 골랐다. 어찌 허리사이즈도 나이만큼 늘어만 가는지 야속한 세월이다.

누구나 즐겨 입는 청바지, `이유 없는 반항'이란 영화 속 주인공 제임스딘은 붉은 셔츠에 청바지를 입어 반항적이고 멋스러움을 자아냈다.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청바지의 아이콘이 되면서 작업복이었던 청바지는 청춘, 젊음 그리고 이유 있는 반항으로 시그니처룩으로 패션계를 흔들어 놓았다. 젊음의 아이콘인 청바지 역사를 보면 18세기 미국, 당시 목화재배가 성행했는데 그때 노예일꾼들을 위한 튼튼하면서도 쉽게 해어지지 않는 옷의 소재로 진(jeans)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후 금을 찾아 서부로 향한 광부들 역시 튼튼하고 찢기지 않은 질긴 원단의 옷이 필요했다. 그때 청원단으로 만든 청바지, 저렴하면서 질기고 튼튼해 작업복으로 큰 인기를 끌었을 뿐더러 대중들에게까지 판매되었다.

분주한 거리, 가는허리에 배꼽이 보일 듯 말 듯 짧은 흰색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그녀. 굽 높은 구두를 신고도 긴 머리카락을 찰랑찰랑 흩날리며 경쾌하게 걷는 저 여인, 누가 봐도 상큼한 이십대다. 애써 꾸미지 않은 민낯이어도 아름다운 이십 대는 수채화같이 맑고 청아한 그녀들, 젊음의 상징인 청바지는 환상적인 궁합이다. 그런가 하면 검은색 셔츠를 청바지 속으로 넣고 S라인을 강조하는 스타일리시한 그녀들의 청바지패션, 유채화처럼 짙은 감성이 물씬 풍기며 젊음을 거침없이 달리는 삼십대다.

굳이 차려입으려 하지 않아도 감각적인 매치가 돋보이는 그녀들. 시크한 듯 무심한 듯 뚝 떨어지는 멋, 청바지를 입은 그녀들의 패션은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입는 청바지, 인생라이프 최고의 정점을 찍는 사십 대 후반에 들어서면 점점 소화하기 힘들어진다. 어느 순간 축 처진 엉덩이를 자꾸만 위 옷으로 가려야 하고, 바람결에 흰 머리가 보였다 사라지는 오십 대가 되면 청바지를 입어도 영 맵시가 나지 않는다. 엉덩이 아래로 또 한 줄 더 가는 청바지 주름은 윗옷을 길게 입어 엉덩이를 가리고 덮어주려 애쓴다. 게다가 활력도 감소되어 계단 오를 때면 걸음걸이도 엉거주춤이다 보니 자태가 불편하다.

노을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어둠이 내린다는 육십 대가 넘어서면 골반이 넓어지고 다리도 벌어져 무늬만 청바지인 고무줄바지를 입는 여인들이다. 인생 피날레를 향한 그녀들은 걸음걸이도 젊을 때와 확연하게 달라졌다. 느릿느릿 보폭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인생 후반을 향해가는 나이, 계절로 말하면 가을이다. 열매들이 가장 농익은 때이고, 향기와 색상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인 완숙한 삶이다. 속이 꽉찬 배추고갱이처럼 그녀들의 삶은 완벽 그 자체로 청바지를 입은 젊음보다 더 매혹적이다.

그렇게 나이대별로 다른 매력을 부여하는 청바지, 작업복이었던 청바지는 셔츠에 검은색 재킷 그리고 헐렁하게 맨 목도리 하나면 멋 내기 패션의 시작과 끝을 상징한다. 티셔츠 한 장과 입어도 좋고, 터틀넥 스웨터와도 인상적인 스타일을 완성해 주는 청바지는 늘 매력을 발산한다.

외모지상주의시대 청바지로 젊음을 돋보이려 하는 건 아니다. 젊음과 자유로움의 영원한 상징이기도 한 청바지, 어쩌면 변화무쌍한 삶의 여정에 외려 세월에 닳고 닳아 남루해져도 늘 변하지 않은 청바지. 이는 자신의 몫으로 꿋꿋하게 굳은 의지로 자리를 지키는 나이 든 우리다. 나이가 들면 어깻죽지를 접는다는데, 아니다 청바지를 입은 젊은 그녀들처럼 당당하게 나선다. 분주한 삶의 거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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