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그득한 공허를 채우는 추억들
마음 그득한 공허를 채우는 추억들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04.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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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우리는 어떨 때 공허로움을 느낄까? 이별, 사별 등 헤어짐으로 인한 상실감을 비롯해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거나 어긋난 인간관계에서 오는 허무함, 목적 상실이나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을 때 우리는 공허로움을 느낀다.

훅하고 다가오는 공허는 심리적인 고통을 안고 들어와 불안, 우울, 무기력 등의 증상을 낳는다. 사회적으로 급변화, 다변화, 다양화가 만연한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는 옷깃 스치는 빈도만큼 상처도 많다.

상처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노소, 사건의 경중과 상관없이 상흔을 남긴다. 그림책 `기억의 숲을 지나/리이징/나는별'은 상실의 상처로 인한 아이의 공허함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온 우주라 해도 과언이 아닌 엄마를 떠나보낸 후 주인공은 상실감에 갈 길을 잃고 헤맨다. 아이들에게 이별인지 사별인지는 중요치 않다. 자아가 완연하게 성립되기 전의 아이들은 나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부모나 특정한 사물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는 시기이기에 부재만으로도 큰 상처로 다가온다.

집 안에서 일어난 상처, 대부분 함구하는 것을 대책으로 삼는다. 일어난 일이지만 일어난 적 없었던 것처럼 침묵하는 것으로 말이다. 침묵은 약이 될 경우도 있겠지만 상처 후의 침묵은 더 큰 트라우마를 낳기도 한다.

묻어둠으로 과거에 있었던 상처를 추스르지 않는 것은, 그 시간에 그대로 머무르게 하면서 현실에 발을 딛기 어렵게 하는 방편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공허'라는 인물을 내세워 아이와 함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위로의 시간을 갖는 것으로 상처를 보듬는다.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지 못하며 깊고 어두운 숲을 걷고 또 걷는 아이가 있다. 그 아이 앞에 나타난 `공허', 무언지 모르는 그 무엇을 함께 찾아 나선다. 둘은 숲에 산재해 있는 물건들을 하나, 둘 발견한다. 엄마가 만들어 준 바람개비, 아빠와 함께 날리던 연, 엄마가 떠나던 날 산산이 깨진 꽃병 조각, 친구를 생각나게 하는 하모니카 등 아이의 추억이 있는 물건들이다.

그렇다. 이 숲은 아이의 기억이 있는 숲이다. `공허'는 물건들을 가슴에 차곡차곡 담는다. 텅 비어 있던 공허가 아이의 기억으로 그득해졌다. 아이는 그동안 갖지 못했던 애도의 시간을 `공허'와 함께 보낸 것이다.

삶이 의미 없다며 느끼는 공허는 다양한 이유로 찾아오기에 근원을 찾기가 쉽진 않다. 공허는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한다. 하여, 이유를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길 전문가들을 권한다. 나를 세밀히 들여다보며 자신의 가치를 알아내고, 친밀감과 믿음이 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의 방향을 궁리하길 권한다.

`엄만 언제 공허함을 느끼십니까'라며 단도직입적인 질문으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앳된 얼굴을 한 가수 신지훈의 `가득 빈 마음에'란 노래다.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요즘을 살아내는 젊은이들의 처한 상황이라 여겨져 그랬다. 젊은이를 둔 엄마이기에 더욱 그랬다. `채워진 것도 버거워 비어 버린 것도, 두려 우려 사는 것도 아닌데, 정답인 위로 없이 나는 살아갈 수 없네 …… 텅 빈 마음을 난 미워해 마주하지 않네…' 암담함이 느껴진다. 뼛속 깊이 있을 공허로움이 느껴진다. 위로가 정답이라 낮게 읊조리는 대목에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관계에서, 현실에서 답을 추구하려 의지가 보여 조금은 안도한다.

우려의 마음 담아 조심스레 당부해 본다. 텅 빈 마음 자세히 봐 달라고,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봐 보라고, 무엇인지 모를 그 무엇을 찾아 텅 빈 마음에 담아 보라고…. 그러면 `기억의 숲을 지나'의 마지막 대목처럼 `앞과 뒤에 나 있는 길'이 보일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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