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죽음 앞에
전세사기 죽음 앞에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04.26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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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한숨이 하늘을 찌릅니다. 민초들의 어이없는 고초에 가슴이 먹먹하고 울화가 치밉니다. 젊은이의 극단적인 선택과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입니다.

전세 사기가 도처에서 행해지는 우리사회의 허술함에 경악했고, 정부와 지자체의 늑장대응에 실망하고 분노했습니다.

인공위성으로 세상 구석구석을 손바닥 보듯 하는 시대에 수백 수천 명의 임차인들이 전세사기에 걸려 거리로 나안게 되었으니 기가 차고 억장이 무너질 입니다.

서울 인천 대전을 비롯한 각지에서 이른바 건축왕·빌라왕이라 불리는 자들이 집 없는 선량한 서민들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대놓고 사기행각을 벌이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으니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사회적 재난입니다. 와중에 세 명의 젊은 세입자가 생목숨을 끊었으니 사회적 참사라 할 만합니다.

전세 사기범들이 우리사회의 허술한 은행융자시스템과 주택관리시스템을 악용한 결과이고, 이들의 탐욕과 범의를 걸러내지 못하고 피해자를 양산한 지난 정부의 잘못된 주택정책의 후과이며, 피해자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데도 안이하게 대처한 현 정부의 실정이 더해진 예고된 인재였습니다.

개인의 돈벌이를 위해 서민들이 사는 빌라를 수백 수천 채를 문어발식으로 소유해도 되는 나라, 그런 빌라에 세 들어 살다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민초들이 많은 나라는 결코 좋은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나라가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이어서 부끄럽고 참담했습니다. 전세금 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 게 민구해서 하느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끊은 젊은 영령들을 긍휼히 여기시어 안식케 하시고, 실의에 빠진 피해자들에게 난국을 타개할 힘과 지혜와 용기를 주시라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우리사회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월세와 전세를 살아본 이들은 압니다. 그 돈이 어떤 돈 인지를. 민초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전세돈은 자신의 목숨이나 진배없는 자산의 총합이고 꿈을 이루는 발판이자 디딤돌이라는 걸. 비록 7천~8천만 원에 불과한 돈이지만 그들에게는 목숨을 버릴 만큼 큰돈이고 기댈 언덕이라는 걸.

저도 그랬습니다. 결혼 때 마련한 전세금 250만원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으니까요. 그 돈을 살림밑천으로 해 직장 다니며 받은 월급을 절약하여 단칸방에서 두 칸 방으로 연립주택으로 아파트로 전셋집을 키워나갔고 그 덕분에 어엿한 내 집 마련을 하고 나름 일가를 이루며 살았으니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렇듯 가난한 민초들에게 전세금은 꿈을 이루는 종자돈이자 굴리면 커지면 희망덩이였습니다.

국가가 임대주택을 지어 민초들에게 저가로 공급해주지는 못할망정 사회초년생들이 자신이 낸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좌절하는 불상사는 없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건축왕과 빌라왕들이 자행했던 문어발식 주택소유와 사기임대를 원천봉쇄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원룸이나 오피스텔 같은 저가의 주거시설에 입주해 사는 젊은이들의 전세금만큼은 정부와 지자체가 지불보증을 해주거나, 전세사기범들이 발붙이지 못하게 가혹하리만큼 형·재정적인 징벌을 가하는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합니다.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지난 23일 정부와 여당이 전세사기 피해 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피해자와 LH(한국주택토지공사) 우선 매수권과 세금 감면 혜택을 주고, 낙찰 받을 여력이 부족한 사람에겐 장기·저리 융자도 지원키로 뜻을 모은 건 잘했다 여겨집니다.

사안이 엄중하고 심각하므로 국회는 조속히 여야 합의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피해자 거주지역의 자치단체장들도 이에 적극 부응해 지자체차원의 지원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시너지를 내기 바랍니다.

세 들어 사는 이 땅의 선남선녀들이 보증금 떼일 염려 없이 자신의 꿈과 희망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주거안정의 묘책을 다함께 강구합시다.

고혼들이 하늘에서 박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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