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트, 땅바닥의 아름다운 꽃
로제트, 땅바닥의 아름다운 꽃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3.04.12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몇 년간 묵혀두었던 강의를 봄 학기에 개설하였다.

`비밀의 정원' 이름도 어여쁜 이 강의는 주로 캠퍼스의 정원을 산책하고 산책한 것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나누는 것을 주로 한다.

강의를 하루 앞둔 화요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산책할 코스 답사에 바쁘다. 작년에 피었던 꽃이 올해도 피었는지, 배롱나무에 새순이 돋았는지, 할미꽃은 졌는지 등등 직접 눈으로 확인할 것들이 많다.

요즘 봄의 지면은 그야말로 충만하다. 작든 크든 저마다의 꽃을 저마다의 때에 열심히 피워내기 때문이다.

꽃이 필 때 꽃마다 내는 소리가 다르고, 그 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다고 상상하곤 한다. 봄의 대지가 얼마나 시끄러울까?

초등학교 교실보다도, 5일장에 나가는 시골 버스 안보다도, 잔칫집 마당보다도 와글와글 기쁜 소리로 가득할 것이다.

원예 식물로 가득한 캠퍼스의 좁은 틈에 청하지 않은 봄꽃 손님이 가득 자리를 잡았다. 민들레, 엉겅퀴, 큰방가지똥, 꽃마리, 냉이, 개망초, 지칭개, 달맞이꽃, 애기똥풀, 이름도 정겨운 들의 풀들.

원예종이 꽃을 피우기 전에, 나무가 그늘을 만들 정도로 잎을 내기 전에 일찍 꽃을 피운다. 꽃을 일찍 피우려니 잎을 만들어낼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잎 없이 꽃을 피우기도 어려운 형편, 그들이 택한 방식은 작년에 생장한 잎을 땅바닥에 붙여 겨울을 나고 그 잎에 기대어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것!

이런 풀들은 땅에 바짝 붙어 있어서 줄기가 거의 없고 아주 짧은 잎을 방사형으로 사방으로 펼친 모양이어서 통칭 로제트(rosette) 식물이라고 부른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모양이 장미꽃을 눌러서 만든 압화 형태를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로제트 식물은 대부분 여러해살이다. 대개 두해살이가 많은데 첫해에는 뿌리의 힘을 키워 수분과 양분을 저장하는데 집중하고, 둘째 해에는 번식에 집중한다. 우리가 잘 아는 민들레는 싹을 틔운 첫해와 이듬해를 로제트 상태로 보내고 3년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고 씨앗을 날려 보낸다. 민들레 씨 함부로 불어도 될까 싶다.

또 로제트 식물은 방석처럼 펼쳐져 있다고 해서 방석 식물이라고도 한다. 방석같이 펼쳐진 채로 지면에 밀착되어 있으니 지열을 얻을 수도 있고, 바람의 저항도 적게 받아 수분도 보호할 수 있다.

또한 방석처럼 펼쳐진 잎으로 햇빛을 많이 받아 겨울에도 광합성을 할 수 있다. 냉이는 겨우내 만든 양분을 뿌리에 저장한단다. 겨울을 난 냉이 뿌리가 그리 단 이유를 알만 하다.

이런 전략적 선택으로 로제트가 되기로 했다고 해서 방한복도 없이 겨울을 나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추운 겨울을 차가운 바닥에 붙어 지내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로제트 식물은 언제 보아도 대견하다. 다른 꽃들이 다 차지한 시간에 내 몫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로제트를 보면 그 작은 생명체 덕분에 힘이 난다.

지금 추운 겨울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로제트를 보라.

땅에 붙어 지열을 얻고, 햇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몸을 최대한 펼쳐 스스로를 살리는 풀. 봄의 전령은 로제트가 피워낸 봄꽃에 제일 먼저 당도하는 것도 잊어버리지 말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