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말에 대한 고해성사
제 말에 대한 고해성사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04.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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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글은 좋은데 말은 별로라는 핀잔을 들었습니다.

평소 임의롭게 지내는 지인의 말이었지만 듣는 순간 기분이 몹시 언짢았고 자손심도 상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이유를 물었더니 반말하고, 씨자 없이 이름을 부르고, 실없는 농담을 해서랍니다.

듣고 보니 그런 말을 들을만했습니다.

공직생활 중에 우군이라 여기는 후배들에겐 이름을 부르며 반말로 의사소통을 했고, 그렇지 않은 후배들에게는 존댓말을 쓰며 거리를 두었던 말버릇이 화근이었습니다.

내 딴에는 친하다고 이름을 부르며 반말했고, 서먹한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우수개소리를 했는데 그게 거북하고 싫었던 겁니다.

같이 늙어 가는 처지라 이해도 되고 솔직하게 말해주어 고맙기도 해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겠노라며 정중히 사과했습니다.

하여 한동안 지난 70년간 행한 말들을 들추어보고 성찰해 봤습니다. 돌아보니 좋은 말도 많이 했지만 험한 말 실없는 말도 많이 했더라고요. 말로 생색도 많이 냈고, 말로 자신의 치부도 가리고, 말로 욕심을 채우며 여기까지 왔으니 말의 신세를 참 많이 지고 살았음입니다.

남을 비판하거나 흉본 적은 있어도 남을 모함하거나 무고한 적이 없어 다행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입(목구멍)을 통하여 표현하고 전달하는 조직적인 소리(음성기호)입니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소리는 다르지만 태어나서 최초로 하는 말은 엄마이고 아빠일 겁니다.

저도 그렇게 엄마 아빠를 부르며 말문이 터졌고 터진 말문으로 의사소통을 하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살이와 인생살이의 팔부능선을 넘었습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중요시 되는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대과 없이 수행했고,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이런저런 행사에 초대받아 말 꽤나 하고 살았으니 말 덕을 보고 산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사석에서 나눈 말들은 부실하고 미숙하고 허술했습니다.

이성보다 감성에 치우쳐 말한 적이 많았고,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남발했고,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지껄여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했고, 내가 좋으면 남들도 좋을 줄 알고 떠벌였으며, 남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내 말을 더 많이 해 실언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행동보다 말이 앞섰습니다. `찾아뵙겠다, 도와주겠다, 보은하겠다, 다음에 한 턱 쏠게' 해놓고선 정치인처럼 흐지부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식언과 허언의 죄가 실로 큽니다.

또 여자에게 실없는 말을 곧잘 했습니다.

주위에 여자가 있으면 예쁘다거나 멋지다는 말을 남발했고 말로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점잖다는 말이라도 들을 텐데 실없이 끼어들어 점수를 까먹곤 했습니다.

구강구조와 급한 성격 탓에 대화를 나눌 때 발음이 새거나 말을 더듬곤 했습니다.

책을 읽거나 노래를 할 때는 그렇지 않은데 말 할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나 야속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말을 잘해보려 합니다. 아니 말 덕을 쌓으려합니다.

식언 허언 하지 않고 진정성 있고 사려 깊은 고운 말 바른말을 하고, 가급적 존댓말을 쓰고 긍정과 배려와 감사의 언사를 하며 살겠습니다.

결심한대로 살기 어렵다는 거 경험 치로 잘 압니다.

하여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날마다 하느님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주님의 평화로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하고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말 한마디로 목숨을 잃는 이가 있음도 상기하겠습니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는 베를린 시청 현관에 새겨진 문구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글도 좋고 말도 좋은 당신! 욕심인가요?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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