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복순(kill福順)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유
킬복순(kill福順)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이유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04.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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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최근 와이프가 영화 `길복순'을 소개해줬다. 킬러인 길복순(전도연 분)이 군더더기 없이 쿨(cool)한 킬러이기 때문에 속이 다 시원해서 볼만하다고 했다.

길복순은 살인 청부기업의 임무 완수율 100%인 A급 킬러이다. 길복순은 일할 때는 일만 생각한다. 킬러들의 세계에서 과업의 완수 외에 과정의 정당성이나 정리와 의리 등은 불필요한 사치이다. 오다 신이치로(황정민 분)와 결투하다가 장비가 시원치 않자 타임을 부르고 총을 가져와 쏴 죽인다. 길복순과 몸을 섞었던 한희성(구교환분)을 포함한 동료 킬러들은 길복순의 목에 상이 걸리자마자 곧 적으로 변하여 길복순을 죽이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길복순에게 살해당한다.

길복순의 성공 비결은 상대 약점 공략이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이긴다. `길복순'에서는 아킬레스건을 베는 장면이 유달리 많이 나온다. 아킬레스건은 인간 약점의 상징이다. 거기를 베이면 상대는 주저앉아 죽음을 맞게 된다.

길복순만큼 싸움을 잘하는 인물로는 차민규(설경구 분), 한희성(구교환 분) 정도인데 한희성은 싸움은 길복순만큼 잘하나 병든 아버지가 약점이다. 그래서 그 약점 때문에 청부살인 기업의 규칙을 어기고 불법 하청 살인에 말려 결국 길복순과 싸우다 죽는다. 차민규의 동생인 차민희는 오빠에 대한 사랑이 약점이다. 길복순이 사업에 장애가 되니 죽여야 된다는 걸 알지만 오빠에 대한 애정으로 판단이 흐려져 길복순에게 살해당한다. 차민규는 가장 강한 인간이지만 길복순에 대한 사랑이 약점이다. 길복순이 그 약점을 지적하자 순간 냉정함을 잃고 길복순에게 기습을 당해 죽게 된다. 킬러 기업 최고 인턴인 김영지는 길복순과의 의리를 지키다 차민규에게 살해당한다.

길복순의 약점은 15살짜리 중학생 딸이다. 킬러로서의 냉혹함이 딸 앞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하다고 말할 정도로 딸과의 씨름에서는 감정 소모가 심하다. 자신의 아들을 죽여 달라는 총리 후보자의 청부를 맡고서 자식을 죽이는 비정한 애비에 구토를 느껴 과업을 포기한다.

자식을 둔 어미로서의 약점 때문에 킬러의 경력에 오점을 남기는 일을 저지르고 이 때문에 줄거리가 복잡하게 꼬인다.

길복순은 모든 킬러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가장 강자가 되어 살아남는다. 엄마는 동성애자이자 살인충동을 갖고 있는 딸을 수용하고 딸은 사람 죽이는 게 업인 킬러로서의 엄마를 인정하며 모녀로 살아가게 된다.

황정민의 자기애(自己愛), 한희성의 효심, 차민희(차민규의 동생)의 오빠에 대한 사랑, 차민규의 길복순에 대한 사랑, 길복순의 딸에 대한 사랑 등은 감정소비가 심한 품목들로서 사람들의 약점이다. 이런 것들만 없다면 사람들은 아주 쿨하게 살 수 있다.

이 중에 어떤 게 가장 지독한 것일까? 영화 `길복순'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말한다. 보다 큰 약점에만 굴복하는 인간은 보다 작은 약점에 굴복하는 인간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길복순은 딸이라는 약점을 갖고 있지만 모두의 약점을 공략해서 끝까지 살아남는다. 딸이 동성애자이든 말든, 친구를 가위로 찔렀건 말건, 엄마가 밖에 나가 어떤 사람을 어떤 식으로 죽이든 엄마와 딸의 관계를 깨지 못한다. 이보다 약한 정서 앞에 무릎을 꿇으면 길복순에게 약점이 잡혀 죽게 된다.

집사람은 왜 나한테 `길복순'을 보라고 했을까? `길복순'에서는 쿨하게(정에 치우치지 않고), 깔끔하게 사람을 죽여버리는 게 너무 시원하다고 했다. 감정소모를 강요하는 인간들을 청소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이미 나는 와이프의 약점이 아니다. 자식에 대해서도 정서적 정리가 끝나서 아무 고민 없이 다 죽이기 때문에 시원하다고 한 건 아닐까?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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