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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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석범 청주 복대중 교감
  • 승인 2023.04.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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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청주 복대중 교감
강석범 청주 복대중 교감

 

충북교육문화원 2층을 들어서자 저만치 로비 의자에 두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햇빛을 등지고 있는 모습이라 역광 실루엣이 정확하다. 누가 보아도 알 수 있을법한 우 선생님께서 엉거주춤 나를 알아보곤 화들짝 반겨주신다.“어이쿠 교감 선생님 오랜만이네요? 어째 더 젊어지셨어요?” “우선생님 오랜만입니다~ 내가 너무 빨리 왔나요?” “아닙니다. 5시가 맞아요. 다들 좀 늦네요? 첫날이라 그런가?”

오늘은 청풍명월 교육사랑합창단 2023학년도 개강식 날이다. 휴대전화로 비대면 오디션을 보며 벌벌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다들 퇴근하고 난 시골 중학교 교무실에서 휴대전화에 대고 청춘 때 즐겨 불렀던 `묻어버린 아픔'이라는 가요를 목이 터지라 불렀다. “어둠이 내려와~ 거리를 떠돌면~ 부른 바람에 내 모든 걸 맡길 텐데~ 한순간 그렇게 쉽사리 살아도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해~” 전화기 너머로 귀를 쫑긋 세우고 계실 오디션 심사위원님들의 모습은 눈앞에 보이질 않았지만, 그 긴장감이란…. 당시 절친 였던 후배 남교사는 응원을 핑계로 교무실에 남아 어색함을 감춰가며 애써 커피믹스를 홀짝거렸다. 박수는 치는 둥 마는 둥.

그로부터 2년이 훌쩍 지났다. 입단 첫해는 어찌어찌 출석하며 겨우겨우 발표회 무대에 섰다. 하지만 작년엔 매주 화요일 연습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학사일정으로 1년을 푹 쉬었다.

첫날이라 그런지 괜히 더 어수선하다. 신입회원 선생님들도 오시고 일찍부터 연습실 한쪽에 아무 말 없이 덩치 큰 남자도 앉아있다. 여기저기 첫날의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반가움의 표현도 유난히 크다. 단장님이신 지선호 교육문화원 원장의 인사말도 이어진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개강식을 진행하던 사회자의 소개는 계속된다. “올해부터 새롭게 교육사랑합창단을 맡아주실 지휘자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아까부터 혼자 앉아있던 덩치 큰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제가 성대모사를 잘합니다. 외모도 살짝 닮았지요?” 하면서 양희은 노래를 한 소절 부른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와우~ 프로다. 한방에 모든 사람을 순간 집중시킨다. 오늘의 주인공이다. 곧바로 연습에 들어간다. “아~, 저는 합창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신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스럽고 억지스럽지 않아야 합니다. 먼저 목 한번 풀고 갈까요?” 정말 달변가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가 아니고 자기소개부터 실제 연습에 들어가는 모든 상황이 철저히 계획된 듯한데 전혀 어색하고 거부감이 없다. 단원들은 호기심을 갖고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몰입하고 또 악보를 자연스레 뒤적인다. “제가 이래 봬도 정말 엄청나게도 결혼은 했답니다. 현재도 잘살고 있구요” 뜬금없는 너스레에 또다시 웃음이 터진다. “음… 단원 중에 익숙한 분이 몇 분 계시네요? 최 선생님? 저 아시죠? 최 선생님 하고는 오래전에 시립합창단 오디션을 같이 봤던 인연이 있어요. 그리고 김 선생님? 아주아주 오래전에 같은 선생님 밑에서 성악을 배웠었죠? 30년 만이니 내가 어찌 알아볼 수 있겠어요?”

뭐 그리 중간중간 주저리주저리 떠드는데 하나도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몰입이다. 와~ 저 정도면 탤런트다. 합창 연습 도중 자연스럽게 개개인의 소리도 확인하신다. 그것도 단원이 당황하지 않도록 섬세한 배려의 기술이 들어간다. 나는 오늘 합창단원이 아니라 진정`마에스트로'를 지켜보는 관객 모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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