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강원상회
구멍가게 강원상회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4.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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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강원상회 앞 평상은 비어 있는 때가 없다. 한낮에는 그 가게를 행인이 쉬어 가기도 하고, 아침에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난 새댁이 한 숨을 돌리기도 한다. 또 어느 때는 날이 새자마자 해장술이 고픈 사내 둘이 굵은 소금을 안주 삼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때도 있다. 평상을 빌리기는 길고양이들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봄볕을 못 이기고 자울자울 조는 길고양이들에게도 구멍가게의 평상은 요긴하기만 하다. 
우리 동네 역말의 정 중앙을 관통하는 큰길 중간쯤, 강원상회가 있다. 강원상회는 노부부가 오랜 세월을 운영한 구멍가게였다. 지금은 두 분 모두 돌아가신지 몇 년이 되었다. 나는 일을 하러 갈 때면 으레 그 가게 앞을 지나게 된다. 빛바랜 간판만이 주인의 부재를 알리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강원상회는 본채인 가게 옆으로 길게 꽤 여러 개의 셋방이 딸린 구조다. 5년쯤 이었을까. 그때는 두 분 모두 살아 계셨는데, 셋방에서 불이 크게 나는 바람에 세를 들어 살던 사람들이 그 집에서 모두 나가게 되고 한동안 셋방은 수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두 분이서만 본채에서 살았던 듯했다. 
할아버지는 손재주도 좋으셔서 동네의 고장 난 연탄보일러 수리도 잘하기로 소문난 분이셨다. 키도 훤칠하게 크셨던 강원상회 할아버지는 종종 동네를 다니실 때면 긴 막대기를 훠이훠이 흔들며 다니셨는데 우리 집 앞을 지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할아버지를 볼 때면 기다렸다는 듯 시끄럽게 짖어대는 견공 청이에게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큰소리로 호통을 치시곤 했다. 그에 맞서 청이도 절대 물러서지 않고 으르렁거리는 통에 내가 나와야 할아버지도 청이도 멈추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때마다 “그놈 참, 집 잘 지키네.”라는 말과 함께 멋쩍은 표정을 지으시며 발길을 돌리곤 하셨다. 그러고 보면 참 장난기가 많으셨던 분이셨다.
강원상회는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만 해도 아침에 눈만 뜨면 달려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때 우리 부부는 가게 일로 깜깜한 밤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던 때가 잦았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면 강원상회에서 외상으로 과자를 사 먹거나, 라면을 사다 끓여 먹곤 했다. 돈이 없어도 누구네 집 아이인지 아시니 외상으로 주시곤 하셨다. 가게는 언제나 할머니가 보고 계셨는데 방에서 잘 나오시지 않으셨다. 손님이 물건을 가지고 방 앞으로 가면 계산을 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하셔서 그랬던 듯도 하다.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동네 사람이다 보니 아무도 이상하다거나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그 가게가 싫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 가게에서 우유를 사 왔는데 집에 와서 보니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바꿔달라고 했더니 할머니께 된통 꾸중만 듣고 말았다며 다시는 그 가게에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그러는 데에는 그 무렵 강원상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젊은 부부가 마트를 새롭게 연 까닭이기도 했다. 지금으로 치면 작은 마트지만 그때는 강원상회에 비하면 물건도 많기도 하고 신선하기까지 했으니 아이들이 강원상회를 꺼릴 만 했다. 
그럼에도 강원 상회는 내게는 정말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강원상회에서 사 온 막걸리로 메스꺼움을 달래곤 했다. 나는 한동안 아침이면 강원 상회에서 시원한 막걸리를 사오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우리 집과는 지척이니 몸과 마음이 힘든 나에게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분명 오늘도 강원상회는 문이 굳게 닫혀 있건만 나는 왠지 그 문을 열고 들어가고만 싶다. 빙그레 웃어 주시던 할머니의 모습과 소년처럼 맑은 얼굴로 웃으시던 할아버지가 계실 것만 같다. 순간 담벼락으로 눈이 갔다. 언젠가 마을벽화 그리기 사업으로 강원상회 담벼락과 가게 옆으로 난 대문에는 정말 정겨운 그림들이 그려졌다. 그 중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정히 대문으로 들어가고 계신 그림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아마도 두 분의 모습이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게 저렇게 남겨 놓으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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