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의 꿈
얀의 꿈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3.04.0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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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조금 까무잡잡한 20대 초반의 청년은 훤칠하니 잘생겼다. 옆머리와 뒷머리는 조금만 정리하고 앞머리는 자연스럽게 해 달라고 이야기해 깜짝 놀랐다. 한국어가 여간 능숙한 게 아니었다. 미얀마에서 온 그의 이름은 얀, 23살로 한국에 온 지 3년 조금 넘었다고 했다. 우리 말은 소리는 다르나 뜻이 비슷한 단어가 많아 외국인들이 쓰는 단어는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유의어가 많은 우리 말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그 친구가 특별하게 보였다.

이곳 음성은 도시와 가까워 크고 작은 여러 기업체와 물류창고가 많은 산업지역이다. 그런 지역 특성상 타지에서 온 사람과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렇게 알게 된 얀과 그의 친구들은 그 후로 단골손님이 되었다.

하루는 얀과 함께 근무하는 중년 여성 고객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회사의 생산팀에서 일하는데 우리나라 청년의 입사율이 매우 낮아 한국인 청년은 몇 없다고 했다. 입사 후에도 외국인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같은 취급 받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한다며 퇴사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걱정스럽다고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요즘은 우리나라 청년 중에 `일하지도 않으며 할 의지도 없는 자'를 `니트족'이라 한다. 산업 구조가 변하고 다양한 직업이 생기면서 부모님 세대와 취업의 조건이 달라졌다. 취준생들의 학벌이 높아지고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원하는 반면, 많은 기업은 직원을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들의 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까이 지내는 지인에게 서른을 넘긴 아들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 여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흔한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은 채 부모에게 받는 용돈으로 지낸다. 무위도식하는 아들을 보면 수시로 화가 치민다고 했다. 듣는 나도 화가 나 용돈과 휴대전화, 컴퓨터 요금을 모조리 끊으라고 누누이 말하지만, 지인은 빙그레 웃고 만다. 아마도 아들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미용실을 하는 나는 아들 또래의 청년들을 자주 접한다. 대학 졸업을 앞둔 한 청년은 딱 일 년만 놀고 싶다고 했다. 지금 놀지 않으면 영원히 놀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면서 나의 청년기를 떠올렸다. 졸업과 동시에 부모님께 손을 벌린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는데…. 순간 나도 별수 없는 꼰대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인문학에서 젊은이와 늙은이의 정의를 이야기할 때 젊은이는 `저를 묻는 이'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 자'이며, 늙은이는 `늘 그런 이'로 `늘 제자리 현실에서 안주하는 사람'이다. 젊으나 변화를 꿈꾸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이는 `젊은 늙은이'이며 늙은이지만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하며 도전하는 자는 `늙은 젊은이'라고 한다. 백세 시대를 사는 요즘 `늙은 젊은이'가 많아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반대로 `젊은 늙은이'들은 점점 늘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얀의 취업 비자가 5년 만기되어 고향에 가게 되었다. 멋지게 펌을 해 달라며 웃는 얀은 그간 코로나19와 미얀마 내전으로 한 번도 고향에 가지 못해 두 달 있다 올 계획이라 했다. 얀에게 돈 많이 벌어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땅을 사고 싶다고 한다. 한국에서 딱 10년만 일한 뒤 미얀마 북부 시골에서 평생 남의 땅에서 일하시는 부모님 대신 농사짓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얀의 꿈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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