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사랑하다 - 둥지나무
나누고 사랑하다 - 둥지나무
  •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 승인 2023.03.28 17: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간의 문앞에서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안승현 청주문화재단 공예진흥팀장

 

동이 텄는데 사뭇 조용하다. 하긴 늦잠을 즐기는 녀석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은데 오늘은 유난히 늦다. 어제 무리를 했나 싶다. 해가 지며 바로 곯아떨어졌을 테고 일어난다 한들 온몸이 쑤시니 쉬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멀리 감치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이 보인다. 여러 채다. 나란히 심어진 나무에 둥지를 모두 틀었다.

어느 것이 올해 신축된 집인지 분간이 안 된다. 분명 가장 멀리 있는 은행나무에는 집이 있었던 듯한데 가물가물하다. 얼기설기 허술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데 작년 태풍을 잘 견뎠다.

한겨울 눈을 그래도 소복하게 담았을 터인데 하중에 무너지지 않고 형태가 고스란히 남았다.

작년 씨를 받자마자 모판에 부어놓은 작약이 싹을 틔웠다. 한겨울 한데서 월동을 하고 일제히 싹을 올렸다. 땅의 기운을 쫓아 뽀얀 뿌리를 내리고 상쾌한 공기를 헤집고 붉은 싹을 올렸다. 뿌리가 엉키기 전에 옮겨심어야 한다. 어지간히 많아야지 이걸 언제 다 심는단 말인가? 뽀얀 실뿌리가 상할까 작업에 몰입한다.

푸드덕! 푸드덕! 뭔가 커다란 것이 바로 옆에서 난리다.

잔가지가 잔뜩 있는 커다란 가지를 부리에 물었는데 날지를 못하고 날갯짓뿐이다. 사람이 있으니 쫑쫑 걸음을 몇 발짝 걷고는 이내 다시 날아간다. 포기했는지 괜한 성질에 높은 가지에 올라 힘껏 점핑이다. 삭정이였는지 바로 부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다.

이내 다른 까치가 날아든다 싶더니 잽싸게 물고 둥지로 날아간다. 한 번 성공했으니 다른 나뭇가지로 옮겨 다니며 나뭇가지를 부러트린다. 하긴 삭정이니 언젠가 부러질 터 신나서 도약 뛰기다. 부러트리는 족족 한 마리는 연신 나른다. 보통은 한 마리가 나르고 한 마리는 집을 짓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자재가 넘쳐나니 다른 녀석에게 빼앗길까 욕심을 부리는 듯하다.

나뭇가지를 물고 나르던 녀석들이 보이지 않는다.

멀찌감치 둥지에서 보였다가 보이지 않았다. 뭘 하는 걸까? 정말 분주하기 짝이 없다. 저 녀석들은 올해 쌍을 이룬 녀석일까? 내년에 다른 집을 지을까? 괜한 생각에 싹을 틔운 작약을 잊었다.

야들야들할 것 같은 영산홍 가지에 앙증맞은 빈 둥지가 있다. 그리 거칠지 않을 것 같은데 얼마나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려 했는지 솜털이 잔뜩 깔렸다.

쿠션에서 이보다 좋은 성능을 가진 소재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아로니아 가지에도 둥지를 틀었다. 바닥에는 깨진 알껍데기가 떨어져 있다. 개수로 봤을 때 여러 자녀가 알을 깨고 독립한 듯하다. 푹신하고 보들보들한 솜털을 깔고 사랑을 나누고, 알을 낳는데 따뜻한 온기를 전해줬을 집 한 채가 작지만 옴팡하고 야무지게 지어졌다. 알을 품는 동안 훼방하는 녀석을 따돌리고 연신 먹이를 날랐을 녀석에게 애썼다 전해주고 싶다. 작은 덩치로 쉬지 않고 날갯짓을 했을 녀석에게 포상으로 올해부터는 먹이라도 제공해 줘야 할 듯하다.

설계를 의뢰할 경제적 여건이 없으니 오로지 머릿속으로 설계하고 오직 가족을 위해서 손수 집을 지었다. 가족이 머물 수 있는 사랑을 나누는 공간을 가족이 함께 지었다. 외부의 영향으로 일부 손상이 되더라도 다시 지었다.

못을 박고 시멘트를 들어붓지 않아도 되니 그저 부지런한 몸과 가족을 생각하는 사랑만 있으면 된다. 새끼가 알에서 깰 때쯤이면 길고양이들과의 혈투가 벌어지겠지만 한 쌍의 새가 지켜낼 것이다.

0.7명대의 출산율. 그건 자기들끼리의 전쟁을 벌이는 멍청한 인간만의 짓거리라고, 새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또 집을 늘릴 것이다. 둥지나무는 무한대의 사랑을 나누고 번식하는 나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