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가는 길
고향 가는 길
  • 정창수 시인
  • 승인 2023.03.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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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창수 시인
정창수 시인

 

타향이 돼버린 고향을 가는 길이다. 선산에 증조부모님 묘역에는 제절과 망부석을 오래전에 세워 드렸는데 조부모님의 산소에는 차일피일 미루다 올해 윤달이 들었다 하여 비석 제작을 할 겸 성묘도 하러 가는 길이다.

시골집은 읍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초입 소머리와 곰 등을 막아 놓은 백운저수지를 따라 신설된 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학창시절 십릿길 도보로 다녔든 추억의 현장이다. 제일 높은 백운산을 보며 가는 길목 타박 골 황토 고개를 지나쳐야 한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하는 대화 “도깨비님들 잘 계시죠.” “많이 도와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이렇게 주문 외우듯 지나쳐 가고 오는 길이다. 타박 골엔 무서운 이야기들이 전해 오기도 한다. 여순사건과 6·25 때 임시 화장터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붉은 황토는 유난하게 더 붉어 보이기도 하다.

가는 길은 타박 골 아래 저수지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해서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잡초만 서 있던 자리다. 무수한 도깨비 불과 함성이 있었던 자리라는 걸 알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수지 안에는 전답과 몇 개의 자연 부락이 수몰 되었다. 특히 타박 골 아래에는 과거 장례 문화겠지만, 매장을 하지 않고 탈골이 될 때까지 관에 지붕을 씌워 모셨다가 매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조부님이 하시면서 최사인 어른의 얘기도 단골처럼 해주셨다.

어렸던 최사인이 서당공부를 마치고 늦은 밤 집으로 오던 길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할 수 없이 시신을 보관하던 지붕 밑에 잠시 비를 피하는데 난데없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게 손님이 오셨네. 사인달이 오셨구먼”

최사인은 겁에 질러 줄행랑을 쳤다. 흠뻑 젖은 채 집에 도착해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껄껄 웃기만 하셨다. 그 후 과거 급제를 보게 되었는데 사인이 벼슬을 하사받았다는 이야기다. 최사인의 사당도 지금 존재한다.

고향의 황토밭 수박과 개구리참외는 더없이 달았다. 친구네 아버지가 하셨던 여름 과일 생산지였다. 백운교에 모여 놀던 마을 형들이 서리하자고 꼬드겨 사다리를 탔는데 또래 셋이 선정됐다. 셋은 소로 길로 비가 올 듯 스산한 날 걷는데 타박 골 수박밭과의 거리는 꽤나 되었다. 도착해서 밭 언덕에 웅크리고 있는데 당시에도 신작로 가에 외딴집이 한 채 있었다. 외딴집 근처에서 호롱불이 수박밭과 낚시꾼들 다니는 길로 계속 오고 있어 긴장하고 있었다. 여름밤엔 밤 낚시꾼들로 불야성이었다. 카바이트 등불의 밝음이다.

헌데 다행히 수박밭으로 오지 않고 낚시꾼들의 등불 뒤로 가더니 웬걸 갑자기 일 열로 수없이 많은 불들이 타박골재를 향했다. 산 여기저기로 번지며 춤을 추듯 옮겨 갔다. 난리도 아니었다. 노래와 웅성거리는 함성에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뛰어서 돌아왔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서리하기 싫었구나 하고 된소리 들었다. 혼자도 아니고 셋이 경험했는데…. 그 일 이후로 절대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외지로 나와 살다 지나칠 때마다 항상 고마움에 인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당시에는 여러 곳에서 도깨비불이 자주 나타나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어디로 다 갔을까. 가끔 나타나 잘못하는 사람들 혼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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