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올가미
휴대폰 올가미
  •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3.03.26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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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 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게슴츠레 눈을 떴다. 사방이 조용했다. 모두가 잠든 새벽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평소에는 집에 있지 못할 시간, 그래서 다른 이들은 집이 아닌 약속 된 장소, 그러니까 직장이나 교육기관에 있어야 마땅할 오전과 점심시간 사이였다. 나 역시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했지만 가지 못한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팠다. 1년 365일을 돌아보면 이 시간에 집에 누워 있을 정도로 아픈 나날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뜻밖의 순간에 이런 신호를 마주하면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흡사 생존본능 같은 것이었다.

시계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명백한 점심시간.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 현관문을 나선 것을 끝으로 기억이 없는 걸 보니 잠이 들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문득 겁이 났다. 내가 부스럭거리지 않으면 마치 공기마저 잠든 듯 생활소음도 희미한 이 순간이 감격스러우면서도 불안했다. 당장 벌떡 일어나 불안의 근원을 찾아낼 수도 있었지만, 그저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냉장고 앞에 서 있었다. 물이 마시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려는데 익숙한 진동 소리가 들렸다. 마치 알람이라도 설정해놓은 듯 반쯤 주기적으로 울리는 진동. 식탁 위였다. 그리고 모든 의문이 풀렸다. 내가 나 혼자 있는 조용한 이 귀한 시간을 있는 그대로 껴안을 수 없었던 이유. 바로 핸드폰이었다.

떨떠름하게 핸드폰을 열어보니 열 몇 개의 문자와 몇백 통의 카톡과 직장과 집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람과 어떤 글귀보다도 혹한 모습의 광고 팝업창들이 한 번에 나를 덮쳤다. 그 옛날 폴더폰이라면 신경질적으로 뚜껑을 덮어버렸겠지만, 그럴 수 없어 식탁에 그대로 엎어놓았다. 고요했던 머릿속에 금세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소용돌이가 쳤다.

대체로 우리의 삶은 정말 제한적이고 반복적이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걸로 사랑하는 가족을 부양하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아주 가끔 행복한 일탈을 하기도 한다. 여행을 가거나, 사고 싶었던 물건을 사거나. 언뜻 보면 순수하게 나의 의지로 나만의 욕구를 채워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신경 쓰고, 어떤 것에 얽매여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휴대폰이 있다. 끊임없이 전달되는 소리 없는 대화, 홍수 같은 정보, 이어지는 업무들이 마치 끝끝내 아들을 놓지 못하고 파멸로 달려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 영화 “올가미”처럼 우리를 옭아맨다.

사실 거창하게 `삶'까지 운운했지만, 단 하루 어쩌다 주어진 쉼의 시간조차 결국 휴대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느낀 좌절감이 이 모든 글자의 시발점이었다.

현재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일원이라면 연락의 용도이든, 정보의 수단이든 없어서는 안 될 휴대폰. 그러나 가끔은 없어도 될 것 같고, 없어야만 하는 순간에도 강한 존재감으로 우리를 제멋대로 뒤흔드는 휴대폰. 분명히 우리가 온전한 휴식을 위해 두세 시간, 혹은 반나절이나 한나절 정도 핸드폰을 꺼 놓아도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은 우리의 마음 상태 아닐까. 곧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안절부절못한 채.

냉장고 앞에 서 있던 나는 결국 다시 눕지 못했다. 그렇게 휴식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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