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다듬으며
손톱을 다듬으며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3.03.1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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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보슬비가 내렸다. 아마 겨울과 이별을 준비하는 것 같다. 사과 종이상자가 보슬비에 젖어 늘어진 나를 보고 있다. 눅눅한 계절 사이에 나의 시선은 창문 너머 한 여인에게 가 있었다. 책상 위에는 머그잔과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오른손으로 왼손의 손톱에 뭔가를 칠하기도 한다. 멋지고 예뻐 보였다. 눅눅한 하루가 갑자기 환해졌다.

살아오면서 한 번도 손톱 관리를 해 본 적이 없다. 손톱이 길게 나오면 자르는 것조차 귀찮을 때도 있었고 습관적으로 잘라버리면 그만이었다. 손톱을 깎다가 이리저리 튄다고 잔소리도 들었다. 어릴 적에는 손톱이 길거나 때가 끼어 회초리로 손등을 맞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손톱에 대한 기억은 별로다. 그저 거죽일 뿐 하찮게 생각했다.

초저녁 무렵 두 손 모아 따뜻한 물을 얼굴에 몇 번 비벼대며 비누칠했다. 정결한 마음이 든다. 차분해지고 매끄러운 기분이 드는 이유가 뭘까? 이제야 분홍빛으로 살색으로 고운 손톱을 본다. 나의 일부가 나를 만지며, 반세기 동안 효자손 노릇을 해 왔다. 내 몸 겉에 붙어 나를 지켜 준 손톱. 그러고 보니 나는 손톱에 해준 게 하나도 없다. 거칠고 울퉁불퉁했던 손톱에 고마움을 모르고 소홀하게만 대했다. 이제야 미안한 마음이다. 수건으로 손과 손톱을 동시에 닦았다. 우스꽝스럽게 손톱을 예쁘게 다듬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손톱을 깎고 V 날 트리머로 손톱을 밀어내며, 한편으로 만약 손톱이 없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건을 잡을 수 있을까? 젓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밥을 먹거나 휴대폰을 보거나, 글을 쓸 때도 손톱이 없다면 서툴고 불편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물을 마시는 것처럼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손톱은 손가락과 함께 내 생각과 말을 행위로 만들어주었다. 그런 소중함을 모르고 지낸 것이다.

반면 돈을 갈고리처럼 긁어모은다는 속설로, 베트남에서는 손톱을 깎지 않고 기른다. 긴 손톱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매끄럽고 구슬처럼 빛난다. 고대부터 손톱을 기르는 자체가 귀족을 표현하는 부의 상징이었다. 손톱을 보호하기 위해 긴 관으로 된 덮개를 만들어 끼우기도 했다는 설이 있다. 손톱을 다듬는데도 시간을 가려야 했고, 손톱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상자에 보관하거나 땅에 묻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처럼 손톱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다양하다.

살아가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손이다. 손의 역할 중 일부를 담당하는 손톱은 유기적인 관계다. 손끝이 시리면 손이 시린 이치다. 아마 마음도 시리겠다. 살아가는 일이나 살아온 일은 누구나 비슷하다. 우리 몸에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삶을 돌이켜 보는 그 시간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만큼 중요하다. 이 순간 손톱 상태를 꼼꼼히 살펴본다.

손톱을 자르고 지속해서 관리하는 일은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손톱을 다듬거나 관리해 본 적이 없다, 몸이 바쁘니 손톱에 신경 써 가며 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손톱이 깨지고 흰 반점이 생기기도 했다. 손톱의 상태에 따라 갑상선이나 뼈 건강 등을 알 수 있다는데 나는 상식조차 알지 못했다. 일상이 무뎌진 혼란한 미완의 삶이었다고는 하지만, 때늦은 변명이라 하겠다.

나도 모르게 잠들뻔하다 벌떡 일어나 손톱을 주무른다. 손톱을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을 잊고 있었다. 영양제를 바른다. 손톱에서 향기가 퍼진다. 순간 뭔지 모르는 설렘과 평온함이 손톱을 덮는다. 그 손톱에서 성숙한 미의 숨결을 얻는다. 손톱을 다듬고 마음을 다듬는 공생 공존이다. 어느 여인처럼은 못하겠지만 특별한 관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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