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子息)이라는 신세계
자식(子息)이라는 신세계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03.1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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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난 내 아이를 키우며 성장한 사람이라 자부한다. 내 어릴 적 나를 향한 시선이 없는 어른에게는 인사도 못 했고 처음 보는 사람과 눈 마주치는 것도 쑥스러워 나의 시선은 늘 땅을 향해 있었다. 내 의견을 내는 행동(?)을 하려면 장이 뒤틀릴 정도의 긴장과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으로 해결한 적은 당연히 손에 꼽을 정도다.

그랬던 내게 손 번쩍 들고 질문하고 그런 거 아니라고 반문도 하게 하고 싫다는 표현 할 용기를 내게 한 존재들이 생겼다. 내 아이들이다. 그러니 나에게 아이들은 사람됨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그 길을 따라 성장하는 원동력이다.

`더 글로리', 여러 군상의 심리와 행태가 담겨 있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OTT 드라마다.

그중 부모라는 역할과 도리는 밑바탕에 깔려 이야기의 애절한 역할을 담당한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남편의 폭력도, 가진 자에게 무릎 꿇는 수모와 고통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가 있다. 엄마와 애틋한 감정의 교류는 있지만, 가정의 불행은 밖에서의 행동반경에 제한을 두게 했고, 타인의 친절에도 선을 긋게 했다.

그림책 `메두사 엄마/키티 크라우더/논장' 속 메두사(프랑스어 해파리)는 해파리의 촉수와 같은 머리카락 형상을 한 엄마다. 수많은 촉수를 외부로부터 오는 공격에 대처하는 도구로 해파리가 사용하듯 메두사의 긴 머리카락은 은둔하기에 아주 효과적인 보호막 역할을 한다. 메두사에게 온 사랑스러운 딸, 이리제! 메두사는 늘 그래왔듯 머리카락으로 둘러친 가림막 안에서 이리제를 키운다. `너는 나의 진주야. 내가 너의 조가비가 되어 줄게'라며 머리카락 속으로 꽁꽁 숨긴다.

엄마의 머리카락은 보호막 역할도 하지만 가림막 역할도 한다. 친구들이 있는 밖으로 향하는 시선과 다른 세상에서 들어오는 타인의 호의마저 막는 가림막을 이리제는 자꾸만 벗어나려 한다. `부모와 자녀의 만남 역시 다른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우주가 만나는 일이다. 한 우주가 다른 쪽을 잡아먹어선 안 된다'고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다.

가정의 불화도 부모의 과보호도 아이들에게 가림막일 뿐이다. `핏줄'이라는 끈을 이용해 지구 끝이라도 찾아가 악연을 이으려는 부모, 부모라면 자식이 저지른 모든 악행마저도 덮어 줘야 함이 마땅하다고 믿는 자들, 이 모두 다른 쪽을 잡아먹는 관계일 것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라 하더라도 우주와 또 다른 우주에 비유하며 과도한 밀착을 경계하길 작가는 권하며, 메두사가 내는 `용기'로 이런 해법도 있음을 또한 제시한다. 자신의 보호막이라 여겼던 머리카락을 메두사는 꼭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잘라 낸다. 자식의 성장 과정에 맞춰 하나씩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와 지혜로 작가는 보여줬다.

머리카락을 잘라 내며 가림막을 뚫고 나오는 메두사의 용기! 아이들에겐 부모의 시선을 믿고 가정이라는 보호막에서 안정감을 몸에 새기고 나와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품게 할 것이다.

그 힘으로 세상을 향하면 부모보다 더 큰 우주를 형성하는 자양분으로 쓰임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며 나의 신세계로, 자식이라는 신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힘이 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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