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작은 것들
이런 작은 것들
  • 신미선 수필가
  • 승인 2023.03.1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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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미선 수필가
신미선 수필가

 

대학 졸업 한 해를 남겨두고 있는 아들로부터 선전포고가 전해졌다. 학교와 연계하여 학점을 받는 인턴을 시작하겠다는 말이었다. 몇 개의 회사에 지원서를 냈는데 합격했다며 녀석은 목소리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장하다'라는 말로 함께 기뻐해 주는 척 연기했다. 사실 부모의 눈으로는 마냥 축하해주고 칭찬해 줄 수 있는 그런 학과과정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기대를 조금은 비켜가고 있는 듯한 녀석의 방향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녀석은 지난 명절에 내려와 자신의 장래에 대해 이것저것 고민을 털어놓고 올라갔다. 학교 졸업을 조금 미루고 싶다는 말이었다. 여러 방면으로 사회 경험도 쌓아보고 싶고 자유여행도 길게 해 보고 싶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속으로 부글부글 속을 끓였다. 부모가 생각하는 자식의 미래는 군 복무도 마쳤으니 이제 남은 학기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과 동시에 안정된 직장에 안착하는 것이었다. 그 작은 소원을 이뤄주지 않는 녀석에게 내심 서운하기도 했다.

이 녀석이 우리에게 부모라는 이름을 달아주던 그 순간부터 난 아주 좋은 엄마가 되리라 마음먹었었다. 소위 유아교육을 전공한 엄마로서 온갖 좋은 교육이론을 동원해 훌륭한 아이로 키워보리라 다짐했었다. 온갖 유기농 재료로 손수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피부에 좋지 않다고 해서 기저귀도 천으로만 사용했다. 장난감 하나를 사더라도 성장발달 단계를 따져 세심하게 골랐다. 마음이 온유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는 근처 음악학원을 보내 피아노를 가르쳤다. 사춘기가 한창일 때는 더러 큰소리도 나곤 했지만 되도록 아이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민주적인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의 바람대로 잘 자라줄 것 같던 아이는 학창시절 다소 심산했다. 어느 한 날 아이의 담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손목을 다쳤는데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 것 같다는 소리였다. 초등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일어난 일이었다. 같은 반 친구가 약을 올려 화가 났다는 이유로 쫓아가다가 출입문을 주먹으로 쳤단다. 근처 병원에서 몇 바늘을 꿰매고 일단락이 되었지만, 그때의 흉터는 지금도 여름이면 선명하게 자국을 남기며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학생의 본분을 잊고 밤낮으로 핸드폰을 더 가까이 두고 게임에 빠져 있던 시절, 한없이 떨어지는 성적에도 잔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스스로 헤엄쳐 나오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리 키웠는데 성년이 된 지금 아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길이 무조건 옳다고 믿으며 미래를 의논이 아닌 통보로 해온다. 이번 인턴과정이 끝나면 휴학을 하고 자유여행을 갈 계획이란다. 험한 세상으로 나아가 몸으로 부딪치며 삶을 헤쳐나가고 싶단다. 부모의 눈으로 보면 아직도 한창 어린 온실 속 화초 같은데 녀석은 이미 저만큼 부모의 손을 떠나있다.

시대가 변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추울 때 따뜻한 곳에서, 더울 때는 시원한 곳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살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저 작고 소소한 날들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것이면 되었다. 일곱 시간의 진통을 견뎌내고 드디어 품에 안던 첫 대면의 날, 매년 오월이면 피아노를 치며 어버이날을 축하해주던 때, 여느 엄마들처럼 교문 앞에서 수능시험이 끝나길 기다리며 마냥 서 있던 그날…. 이 녀석이 있었기에 누릴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들이 참 많았다. 그것이면 되었다. 삶이란 이런 작은 것들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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