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들에도 봄이 오는가
그녀의 들에도 봄이 오는가
  •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 승인 2023.03.12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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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배경은 단재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저 거친 껍질 속에 무엇이 들었는가. 바람이 벗겼는지 햇살이 녹였는지 알 수 없지만 껍질을 가만히 뚫고 늙은 가지에 봉긋이 올라오는 녹지 않는 눈송이 같은 그것. 바투 허물어진 담장 넘어 단내나는 봄이 오고 있다. 밑에 지방엔 매화가 피어 그윽한 향기로 바람을 적시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어느 시인의 서재 작은 분재에서도 소문은 향기로 피었다 한다. 나는 스스로 봄이 되고자 하는 존재들의 다툼에 올해도 그저 구경꾼으로 있어야 할 모양이다.

더러 좋고 대체로 안 좋은 엄마의 방, 그녀의 고운 살결을 뚫고 스스로 봄이고자 하는 욕망을 끌어다 주고 싶다.

저번 주에 보조기 없이 부축을 받아 화장실에 가던 엄마가 넘어지면서 뒤꿈치가 깨지는 사고가 있었다. 간병하는 아빠는 자책하고 엄마는 아프다며 계속 눈물 바람이다. 엄마 머리맡에 있는 수북한 화장지가 매화꽃 송이라면 좋겠다는 뜬금없는 생각, 계절은 공평하게 찾아오는데 헐거운 영혼을 받아 줄 봄은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난은 집에서 꽃피우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성질이 예민한 탓이리라. 작년 가을 행사 마치고 받은 난을 엄마 집에 갖다 드렸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서도 이지만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는 탓에 내 손을 탔다가 괜히 죽이고 빈 화분을 보면 마음이 울적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줄기나 잎에 비해 푼수처럼 큰 꽃, 꽃이 떨어지고 아빤 겨우내 정성을 들였다. 베란다에 내어놓고 꽃의 낯빛을 살피며 이리저리 돌려 햇볕을 쪼이고 추운 날엔 거실에 들여 맹숭한 줄기를 쓰다듬으셨다. 꽃을 피우기 시작했을 무렵엔 어려운 난이 꽃을 피웠다는 사실보다 엄마께 꽃을 보여드리는 기쁨에 집에 갈 때마다 자랑이셨다. 그간의 본인께서 어떤 정성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무용담과 함께.

지극한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는데 그때 보이는 건 이전과 같지 아니하다' 이제 그녀가 내게 왔다. 나를 낳고 먹이고 입히고 키우던 그녀가 나의 아이가 되어 생의 굴곡을 넘어왔다. 시처럼 봄처럼. 어여쁜 나의 아이여, 내 품에 안겨 아픔과 설움은 그만 잊기를. 이만큼 나이 들어 보니 사랑은 `빠져듦'이 아닌 `달라짐'이었다.

우리는 이미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지금도 형성 중에 있는 존재'로 오늘을 산다. 팔 남매 맏이로 태어나 신산한 노동으로 지금껏 살았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도 노동은 양육과 내조의 이름으로 더욱 견고하게 강도가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팽팽했던 빨랫줄이 참다못해 끊어지듯 그녀의 노동 생활사는 끊어지고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면 일어나 걷는 것도 힘들게 되었다. 불편한 몸이 되었지만, 가사노동의 불꽃은 꺼지고 온전히 돌봄을 받는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두 발로 걸을 때만 존재론적인 존재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있다면, 살아냄이라는 현판을 내걸고 오늘 하루를 살았다면 그만큼의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봄은 사람으로부터 온다. 밖에만 봄이 온다는 투정은 아직 내가 봄을 끌어당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미 봄이 온 척, 그녀에게 봄이 되어 가야겠다. 향기 진한 프리지어 서너 다발 머리끈처럼 묶어 그녀의 방 가장 밝은 곳에 두고 봄을 불러 세워야겠다.

가사노동으로 주었던 사랑을 돌봄으로 받아 챙기는 날들이 많아도 슬퍼하지 않겠다. 그녀는 받을 만한 사랑을, 봄을 만끽할 자격이 충분하다. 스치듯 지나가게 봄을 그냥 두지 않겠다. 그녀와 함께 우리의 봄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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