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03.01 1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나이를 먹었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심성이 많아질 뿐이다'라는 헤밍웨이 말을 절감하고 삽니다.

지하철 무임승차도 경로석에 앉아도 흉이 되지 않는 나이이긴 하지만 그런 사실이 왠지 애잔합니다.

힘든 일과 과격한 운동은 삼가게 되고 아는 것도 까먹기 일쑤이니 현명은 언감생심입니다.

그럼에도 늙은이 취급 받으면 몹시 불쾌하고 화가 납니다.

그럴 때마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가져온 불협화음이라 여기며 속을 삭입니다.

아무튼 나이 65세에서 75세는 계절로 치면 늦가을과 초겨울이 혼재해 있는 환절기입니다. 겨울이라 여기고 사는 이는 노인이고 가을이라 여기고 사는 이는 장년입니다.

일전에 올린 `늙어서 얻는 깨달음'이라는 글을 읽고 노인대학장을 지낸 곧은 선배가 아우의 삶과 글에 참고 될 거라며 책 두 권을 주며 일독을 권했습니다.

`장수무대' `실버가요제' 등 노인프로그램으로 주가를 올린 전 KBS프로듀서 홍순창이 지은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와 노인문제 전문가인 고광애가 지은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라는 책이었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단숨에 읽었는데 노인은 물론 젊은이들에게도 유익한 양서였습니다.

`나이 드는 데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책도 좋았지만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산다'를 글제로 삼은 건 책명이 도발적이고 충격적일 뿐만 아니라 담긴 함의와 메시지가 강렬해서입니다.

멋진 노년, 행복하고 보람찬 노년을 보내려면 자신의 말과 생각과 행위에 도사리고 있는 고리타분한 노인성을 제거해야 된다고. 그게 노인이 사는 길이고 척도라고.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을 노인(人)이라 부릅니다. 노인장 어르신 노객으로 높여 부르기도 하지만 노인네 늙은이 노땅 등이 웅변하듯 쓸모없는 인간 또는 곧 죽을 사람이란 부정적 이미지가 짙게 드리워있습니다.

그런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쓰는 `실버(silver)'라는 국적불명의 말을 대체어로 쓰다가 요즘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그레이(gray)'나 `시니어(senior)'로 바꿔 부르고 있어 다행이라 여깁니다. 아무튼 노인은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유용한 존재이고, 곧 죽을 사람이 아니라 삶을 여유 있게 음미하며 행복을 구가하는 사람입니다.

자신 속에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노인성을 죽인다면 능히 그럴 위인들이고 그리 살아야 마땅한 분들입니다.

모든 세대가 그러하듯이 노인세대 역시 장점이 있고 약점이 있습니다. 삶의 단맛 쓴맛은 물론 온갖 역경을 헤쳐 온 인생역정과 그로 인한 삶의 여유와 관조는 노인의 장점이자 자산입니다.

반면에 신체의 쇠약함과 지난 삶에서 꽈리를 튼 고정관념과 시대흐름에 둔감한 진부한 사고는 노인들의 약점입니다. 특히 목표와 희망을 내려놓는 자기비하와 의타심은 뿌리 뽑아야 할 독버섯입니다.

이런 약점과 독버섯을 제거하고 도려내야 노인이 삽니다. 노인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골프와 탁구를 즐기는 절친 중에 왕년에 이름깨나 날린 70대 중 후반의 선배들이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 비거리가 준다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재미도 덜하다며 우울해하며 운동을 그만 두려해 `선배님 가수 나훈아와 남진을 보세요. 선배님과 똑같은 나이인데 젊은이 못지않게 여전히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살잖아요. 선배님도 그럴 수 있어요.'라며 자극을 주었더니 요즘 몰라보게 달려졌습니다. 비거리와 스코어에 연연하지 않고 활기차게 운동하는 겁니다.

문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새로운 디지털 용어와 새로운 문명이기의 출현입니다. 젊은 세대가 습득해야 할 지식은 더 이상 어른들의 경험이나 경륜에 있지 않음을, 아니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배우고 익혀야 함을 이놈들이 다그칩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을 넘어 `무불하문(無不下問)'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노인을 죽여야 노인이 사는 세상입니다.

/시인·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