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내만세운동비 국가문화재 승격해야”
“아우내만세운동비 국가문화재 승격해야”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3.02.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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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필 역사문화연구원장 “주민 자발적 참여”
`순국처녀 류관순 실기' 인용 제작과정 활동 확인
“광복 후 최초의 한글 기념비 … 학술적 가치 높아”
아우내만세운동 기념비.
아우내만세운동 기념비.

 

유관순 기념사업회가 1947년 건립한 천안시 병천면 소재 아우내만세운동 기념비(1986년 충남도지정문화재 기념물 58호)를 국가 지정문화재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조한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사진)은 최근 발표한 `1947년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 건립의 역사적 의의'라는 제목의 논문(역사와 담론 제104집,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서 “여기에 더해 아우내장터에서 순국한 20여 분 선열들의 혼을 기리기 위해 지역 주민들의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참여해 순국지에 건립했다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관리돼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조 원장은 이 논문에서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가 유관순 열사 등 20명이 순국한 아우내 장터 인근 주민, 유족 등의 자발적 성금 모금 등 열열한 성원으로 세워졌음을 밝히고 일부 사학계의 `유관순 선양 사업이 친일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일부 우익 인사들의 프로젝트로 진행됐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조 원장은 논문에서 유 열사의 조카인 유제만(1915~1987, 당시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 제막식 준비위 부위원장)이 1947년 작성한 `순국처녀 류관순 실기'를 인용해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의 제작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열성적인 참여 활동을 확인했다.

조 원장은 “류관순 실기를 분석한 결과 기념비 건립을 위해 221명의 개인과 기관, 단체가 성금을 냈는데 이 중 유관순 열사의 고향이자 아우내만세운동이 거행된 병천면과 동면, 수신, 성환, 북면, 풍세, 성환 등 천안지역 주민이 전체 성금 기탁자의 97%를 차지했다”며 “서울에서는 단 3명만이 개인 이름으로 성금을 낸 것으로 보아 아우내만세운동 기념비는 순수 천안 지역 주민의 열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밝혔다.

실기에 따르면 아우내만세운동기념비 건립 부지는 당시 병천 출생으로 세브란스 의과대학을 나와 의사로 활동하던 송기영이 희사했다.

송씨의 동생인 기웅은 기념비 건립 성금으로 개인 최고액인 5000원을 냈다.

당시 모인 성금은 초등학생을 포함 천안 주민 182명과 지역 기관단체 31곳 등 모두 221건 16만1960원이었다. 당시 쌀 한말 가격이 500원이었으니 지금의 쌀 가격으로 환산하면 약 2000만원 정도. 하지만 당시 쌀의 가치로 따져보면 현재 돈으로 최소 1억원 이상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우내만세운동 기념비는 독립운동가이며 한학자이자 대한민국정부 초대 감찰위원장을 역임했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 비문을 짓고, 청년 서예가로 훗날 대가로 명성을 날린 일중 김충현이 글을 썼다.

높이 1.68m의 사각기둥 형태로 6층의 기단(높이 1.97m)에 올려졌다.

조 원장은 “아우내만세운동 기념비는 당대의 학자인 위당(정인보)이 짓고 서예계의 거두인 일중(김충현)이 쓴 광복 후 최초의 한글 기념비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도 높다”고 밝혔다.

/천안 이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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