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와 자두나무
직박구리와 자두나무
  • 이창옥 수필가
  • 승인 2023.02.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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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창옥 수필가
이창옥 수필가

 

해가 기울고 있다. 둥지로 돌아가기 전 뱃속을 채우려는지 나뭇가지를 옮겨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는 직박구리들이 소란스럽다. 떼로 몰려다니며 끽끽대는 소리가 위협적이기까지 해서 밉살스럽다. 굳이 사람으로 비교하자면 도덕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인간들처럼 느껴진다. 일터에서 틈틈이 바라볼 수 있는 공원은 많은 것을 누리게 한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며 뛰어노는 모습을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지팡이를 짚고 쉬엄쉬엄 걷기 운동하는 것을 보며 내 미래를 보는 듯 애잔하다. 어디 그뿐이랴. 여러 종류의 나무들은 제각각 계절이 머물다 오고 가는 것을 알려준다.

공원은 사람들 말고도 산책 나온 반려 견들과 길고양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한다. 까치와 참새는 공원 단골 손님이고 가끔은 곤줄박이와 박새들도 놀러 와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며 놀다 가기도 한다. 그런데 삼년 전 어느 날부터 직박구리 몇 마리가 날아와 공원을 탐색하는듯하더니 제 친구들을 떼거리로 불러 모았다. 무리지어 날아다니며 울어대는 소리는 얼마나 시끄럽고 요란한지 귀가 따가울 지경이었다. 녀석들의 식성은 잡식성인지 가리는 것이 없는 듯 보였다. 그중에 느티나무 씨앗은 입맛에 잘 맞았는지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까맣게 나무를 점령해버리고 다른 새들의 접근은 용납하지 않았다. 어쩌다 참새 떼가 날아오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참새들을 쫓아 버렸다. 자기들보다 몸집이 큰 까치가 날아와도 마찬가지였다. 집단으로 삑삑 소리를 내며 위협적으로 세력을 과시해 까치들마저도 직박구리가 공원에 있는 날이면 피해버리는지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아예 공존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공원에 직박구리들이 모여드는 날이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눈에는 마치 이기적인 사람들이 패거리 문화를 형성해 주변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만 잘 먹고 잘살면 그게 정의고 옳은 일이라고 우쭐대는 꼴하고 똑같아 보였다.

공원 언덕에는 자두나무 한그루가 서 있다. 얼핏 보면 한그루이지만 자세히 나무 밑동을 보면 나무 세 그루가 마치 한몸인 듯 연리지처럼 엮여 자랐다. 20여 년 전 내가 자두를 먹고 설마 하며 장난삼아 씨앗을 무더기로 묻어둔 것 중에 세 개가 발아해서 싹을 틔우고 사이좋게 자라난 나무다. 그런 나무가 몇 해 전 봄부터 꽃을 눈부시게 피우기 시작하더니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발길을 멈추게 했다. 더러는 사진을 찍기도 하며 즐거워했다. 그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딱딱한 껍질을 뚫고 싹을 틔운 세 그루의 자두나무가 공존하며 아름답게 자라준 것이 경이로워 나무가 지닌 사연을 자랑하기도 했다.

삼 년 전 직박구리 두 마리가 자두나무 꽃을 따먹고 있을 때 처음에는 꽃을 따먹는 새가 신기해서 바라보기만 했었다. 며칠이 지나자 수십 마리가 꽃을 따먹기 시작했다. 꽃으로 하얗게 눈부시던 나무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가는데 꽃을 지켜낼 수 없어 안타까움에 속이 타들어 갔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봐도 작은 돌멩이를 던져 봐도 새들은 나무 위를 떠날 생각이 없는 듯 더 많은 무리를 불러 모았다. 아마 직박구리를 날 선 눈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약육강식의 본능에 충실할 뿐인 새들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며 마음이 불편하고 심술이 나는 이유는 나 자신에 있을 터였다.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돌아가는 요즘의 사람 사는 세상을 녀석들이 무리지어 하는 짓거리를 보며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분노하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는 꽃이 피기도 전 녀석들이 꽃눈을 따먹는 중이다. 속수무책 그 모습을 바라보지만 얼마 남지 않을 꽃눈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튼실하게 열려 다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기쁘게 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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