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에 세상에 나오는 `직지'에 대한 단상
반세기만에 세상에 나오는 `직지'에 대한 단상
  • 연지민 부국장
  • 승인 2023.02.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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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청주의 자랑이자 한국의 자랑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이 50년 만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어둑한 서고를 벗어나 실물이 공개된다.

청주시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16일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오는 4월 12일부터 7월 16일까지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을 주제로 한 전시에서 직지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이 특별전에 대해 `인쇄술의 발전 역사와 성공의 열쇠를 추적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 제목만 봐선 유럽 중심의 금속활자인쇄술에 대한 조명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동양과 서양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와 구텐베르크 성서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뛰는 순간이다. 세계에서 역사를 바꾼 10대 발명품으로 인정받는 금속인쇄술을 볼 때 `금속활자로 찍은 책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 직지의 가치'는 몇십 번을 되풀이해도 부족하다.

7년 전 기자는 직지 취재 차 프랑스 국립도서관을 찾았던 적이 있었다. 직지의 가치를 조명하는 기획 기사를 쓰기 위해 파리를 찾았지만 도서관 측으로부터 연구자 외에 실물은 보여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 했다. 물론 방문 두 달 전부터 프랑스 국립도서관 담당자와 연락을 취하고 취재를 요청했음에도 담당자의 반응을 냉랭했다. 당시 직지반환 운동이 국내여론으로 형성되다 보니 도서관 빗장이 더 단단해졌고 끝내 그들의 동양관 서고문은 열리지 않았다. 어느 나라보다 언론 취재에 관대한 나라임에도 취재를 허락지 않는 그들의 태도에 오랫동안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직지는 분명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이지만 보고 싶어도 보기 어려운 유산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고인쇄기술을 상징하는 금속활자본이자, 조선의 과학기술과 학문적·종교적 깊이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임에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의 허락을 받아야 볼 수 있다. 천 년이란 시간을 견뎌낸 한지의 우수성과 쇠와 불, 흙으로 탄생한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는 다각적인 조명할 필요하지만 실물을 보기 위해선 지금도 똑같은 절차를 밟아야 가능하다. 그런 직지가 비록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통해 공개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롭다.

조국에서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던 직지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주한 프랑스대사격인 꼴랭 드 쁠랑시가 만국박람회에 출품하면서 조국을 떠난 직지는 프랑스에 귀속된다. 그리고 직지는 여러 경로를 거친 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고, 이후 서고에 묻혀 있던 직지를 박병선 박사가 재발견하면서 1972년 파리에서 열린`유네스코 세계 도서의 해'기념 전시회에 두 번째 공개되었다. 박병선 박사는 직지가 금속활자로 찍은 책임을 증명하고자 온갖 실험을 자처했고, 세계 석학들이 모인 자리에서 직지가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앞서 제작된 현존하는 금속활자본임을 증명했다.

결과론적이지만 직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실마리 같은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꼴랭 드 쁠랑시와 박병선, 그리고 직지를 찍은 흥덕사가 밝혀지기까지 갈피갈피 펼쳐지는 역사의 드라마는 우연과 필연이 만들어낸 운명의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역사의 파편들을 간과하지 않고 하나하나 맞춰가며 학계로부터, 직장동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혹독한 시간을 견뎌낸 박병선 박사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의 직지가, 한국의 고인쇄기술이, 조선의 기록 문명이 더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직지의 대모로 부르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박병선 박사를 기리는 기념관 조성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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