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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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 지 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3.02.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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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 지 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 지 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상태로 잠에서 깼다. 간밤에 자면서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를 뉘었던 베개의 양옆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었다. 밤새도록 눈물에 푹 젖어 있으면서 눈이 퉁퉁 붓는 바람에 쌍꺼풀이 마치 수술을 한 듯 두 배로 커져 있었고, 눈동자는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일의 이유는 바로 꿈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지진이 일어난 지역 한가운데 서서, 땅이 내려앉고 건물이 무너지는 걸 보며 이 사실을 당장 우리 엄마한테 알려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리고 울부짖고 있었다. 무서움을 넘어선 극한의 공포에 휩싸인 채 그저 앞으로 계속해서 발을 디뎠지만, 내가 디디는 곳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생생하게 모두 되살아난 꿈 때문에 하마터면 눈물이 또다시 흐를 뻔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제껏 국내외 이슈에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살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뉴스를 잘 보지 않고, 신문을 잘 읽지 않는 삶의 패턴 속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진 현상이었다. 그런 나에게 변화가 일어난 건 바로 출근길에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면서였다. 우연한 기회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애청하게 되었는데, 방송 중에 꼭 5분씩 뉴스가 나왔다. 소위 `뉴스'라는 것이 듣기에 기분 좋은 소식보다는 화가 나거나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전해주기에 5분 동안 라디오를 꺼볼까 고민했지만, 잠깐이니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이 왠지 더 크게 들었다. 그래서 뉴스를 듣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시리아 지진'에 관한 보도였다.

지진 초기였지만 워낙 강진이어서 사망자가 7천명에 달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7천명이라는 숫자가 엄청나게 비극적인 숫자가 아니라 기적의 숫자라는 걸 알지 못했다. 다음날 뉴스에서는 사망자가 만명에 이른다고 했고, 며칠이 지나서는 2만명, 그리고 지금은 4만명이 넘었다는 소식을 포털사이트만 들어가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숫자가 너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였을까, 되레 4만명이라는 숫자가 7천명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보다 충격이 덜했다. 마치 믿을 수 없는 어떤 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이 잠시 넋을 놓고 멍해지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렇게 시리아 지진은 너무도 슬프고 안타까운 이웃 나라의 재앙이지만, 내 삶에서는 멀어져갔다.

하지만 앞서 말한 꿈을 꾸고 난 후, 조금씩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누군가 시리아 지진에 대해 말만 꺼내도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하룻밤 사이 꿈을 꾸었을 뿐인데도 몸과 마음이 반응하여 밤새 눈물을 흘렸는데, 그 참혹한 실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은 얼마나 클까, 감히 누가 가늠할 수 있을까, 그 비참함을.”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나는 이번 지진으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져버린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또한, 천운으로 살아남았지만, 평생을 두고 이 지진을 트라우마처럼 지고 가야 할 어린 생명들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큰 안타까움을 느낀다.

언젠가는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서서히 복구될 것이고, 지진의 잔해 또한 역사 속으로 묻힐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맥없이 스러져갈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별을 위해 오래오래 기도해주길 소망한다. 오늘 밤, 까만 하늘에 애처롭게 떠 있는 별 하나를 보며 나도 두 손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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