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음에 배어있는 아름다움
거칠음에 배어있는 아름다움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02.1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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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눈을 보면 안다, 발을 보면 안다, 신발을 보면 안다는 둥 여러 설이 많다. 신체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가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 가능한 흔적이 충분히 서려 있기에 그렇다.

이에 못지않은 신체 부위가 또 있다. 바로 손이다. “사람은 말여, 뭣보다도 손이 곧 그 사람이여. 사람을 지대루 알려믄 손을 봐야 혀”라며 손에 대해 대단히 자긍심을 가진 분들의 이야기를 다룬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최승훈 그림·김혜원 글/이야기꽃>이란 책이 있다. 손에 대한 철학적 시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림책이다.

열여덟 사람의 손이 그려진 그림책이다. 무언가를 만들거나, 권하거나, 글씨를 쓰거나, 짚는 손이 있다. 그 손들은 골이 깊은 주름이 있고 못이 박혀 굴곡이 심하다. 외견상으로는 전혀 이쁘지 않다. 그러한데도 독자들은 손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가슴 뭉클함을 느낀다. 거친 손 너머에 있는 신랑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을 건사하느라 애썼을 애틋한 마음이, 어떡하면 식구들 굶기지 않고 목구녕에 밥을 넣을지 고뇌한 세월이 스며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는 감정이다.

요즘 주민센터에서는 손도장을 찍어 본인임을 확인하던 것을 지문인식기가 대신하는데 그 기계가 어르신들의 지문을 읽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단다. 일이십분을 씨름해도 안 되는 경우가 있어 곤란을 겪는다는 안타까움이 녹아있는 공무원의 말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며 생긴 상처들로 찌그러진 지문, 닳고 닳아서 흐릿해진 지문을 기계가 읽어내지 못해 생기는 현상일게다.

그들의 손을 시인들도 그냥 봐 넘기지 않았다. `…… 목숨 놓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손, 찬 점심을 감사하는 저승꽃 핀 여윈 손, 눈물 핑 도는 손, 꽃 손, 무릎 꿇고 절하고 싶은 손, 나는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 차옥혜 시인의 `그 손에 못 박혀버렸다'라는 시의 일부다. 지난한 삶의 여정이었으나 숭고한 인생에 경의를 표하는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이다.

곱상한 손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고생한 사연이 없는 건 아니다. 나의 시아버님은 일평생 사무 일 보시며 가족을 건사하셨다. 그렇기에 시아버님의 손은 곱기가 여느 처자 못지 않았다. 당연히 시어른 모시랴 제사 봉양하랴 일 많았던 시어머님의 타박과 한탄은 노랫가락처럼 귀에 달고 사셨다.

어느 순간, 내 손 또한 엄마와 시어머님의 손을 닮아가고 있음을 봤다. 굵어진 손마디, 툭 불거진 심줄, 까칠해진 피부. 내 엄마처럼 일이 고된 것도 아닌데 손은 닮아가고 있었다.

나도 시어머님처럼 신랑에게 뾰족한 말의 화살을 쏘아 댔다. 그렇다고 맘이 누그러들진 않았다. 손거스러미를 떼어 낼 때면 그 감정은 여지없이 훅 올라온다.

`나이한테는 어쩔 수 없드만 … 할 일이 없어 손이 호강하며 살아'라고 하는 어르신의 넋두리가 진짜 호강이라 들리지 않는다. 시선을 바꿨다. 시절이 바뀌지 않았던가! 고무장갑 끼고 물일하고, 기계의 도움도 받고, 동네 가게가 주는 찬스도 쓰고, 신랑의 손도 빌리며 향 품은 액체로 손을 가꾸어 호강시켜 보려 맘먹었다.

지팡이를 짚고 다녀도 밭을 묵힐 수 없다는 어르신! 그 나이에도 삶의 근육을 보태가며 앞으로 향하는 뚝심은 골 깊은 주름마다 알알이 박힌 세월을 더 빛나게 한다. 거칠음에 스며있는 아름다움, 아름다움 속에 있는 아름다움도 볼 수 있는 시선으로 그린 책! <손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그분들에게 보내는 찬사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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