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을 지날 때
어둠을 지날 때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3.02.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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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헉, 숨이 막힌다. 터널이다. 여기만 들어서면 순간 긴장한다. 혼자 갇혀있는 옥죄임이 달려들면서 나를 괴롭힌다. 캄캄한 굴속이어서인지 없던 공황장애가 생긴다. 앞에 달리고 있는 차가 가고 있는 건지 제자리에 서 있는 건지 분간이 안 갈 때가 많다. 달리다가도 바로 앞에 멈추어 서 있는 느낌을 받는다. 금방이라도 부딪힐 것만 같아 공포가 몰려온다. 유난히 긴 터널을 만날 때면 나는 멘붕이 온다.

그러다 저 멀리 비쳐드는 빛을 감지하면 안도의 숨을 내쉰다. 아군을 만난 듯 반갑다. 목적지를 가는 길에 터널이 없기란 어렵다. 교통을 편리하게 하느라 곳곳에 뚫어놓은 게 수없이 많다. 한 개를 빠져나오면 금세 이어지기도 하고 한참 후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눈을 크게 치뜨고 운전하는 버릇이 생겼다.

극장에 갔을 때 처음에는 안이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급하게 벗어나려 하다 보면 오히려 부딪히거나 계단에 넘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는 가만히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있다 보면 모든 사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깜깜하던 어둠이 밝은 빛이 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하물며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읽어진다.

아주 긴 인생의 터널을 힘들게 지나왔다. 가도 가도 걷히지 않는 어둠에 쓰러져 지치며 온 길이었다.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힘은 아들이었다. 온갖 아픔을 다 견뎌내고서 보게 된 빛은 너무 따뜻하고 달콤했다. 눈이 부셔 잠깐 눈을 감기도 아까운 빛이다. 오래 머물기를 소원했다. 그것도 잠시였다. 나는 아직 더 단단해져야 하는가 보다.

이제 빛이 익숙해질 때쯤 몹쓸 심술을 놓는다. 겨우 살만해지니 암흑의 급습이다. 고생하다 이제 괜찮아 질만 하니 그이가 아프다. 암 진단을 받던 날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한 걸음도 떼놓을 수 없는 어둠, 그 자체였다. 그이가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알면서부터 검사와 수술을 거치는 동안 어둠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내게 찾아온 불청객을 밖으로 밀어내느라 발버둥을 쳤다. 나도 이렇게 거부하고 싶은데 그이는 얼마나 더 할까. 점점 힘이 빠지고 제풀에 꺾여 까부라져서야 저항을 멈춘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둘은 마음이 평온해진다. 초기에 발견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수술도 잘 마쳤다. 이제 몸 관리만 잘하면 된다. 스트레스가 최고의 적이라고 한다. 늘 좋은 생각을 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라는 지극히 평범한 의사의 처방전이다.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그이와 내가 동승한 차가 깊은 터널을 지나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잠잠히 어둠을 들여다본다. 우리에겐 날마다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아들이 있다. 박사, 그 이상의 꿈을 위해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희망의 등대가 켜진다. 길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아는 찰나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운 법이다. 아주 작은 빛이라도 어둠을 몰아내 존재만으로도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지금은 칠흙 같은 밤이다. 이런 밤은 별들이 유난히 반짝인다. 누군가는 별을 보고 꿈을 꾸기도 한다. 어둠을 누릴 줄 아는 사람만이 빛날 줄도 아는 것이다. 별이 까무러치게 예쁜 걸 보면 곧 새벽이 오고 있다는 증거일터다. 물러날 때 더 짙게 자태를 뽐내는 이치다. 해가 질 때 노을이 화려하듯 동이 틀 때가 가까워지면 어둠도 두꺼워진다. 그렇게 새벽이 오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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