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사는 사람-故 한병수 청주시의원을 추모하며
새벽을 사는 사람-故 한병수 청주시의원을 추모하며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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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죽음은 `지금'이 멈춘 것이다.

산다는 것은 시간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과거가 `지금' 현재로 이어지고, 그 현재가 미래까지 진행될 수 있다는 믿음이 삶의 궤적이다. 죽음은 그런 흐름이 `지금'에서 정지되어 살아남은 모든 것들과 궤적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러시아 문호 툴스토이는 단편 <세 가지 의문>을 통해 시간과 사람, 일에 대한 세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은자(隱者)에게 구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무엇이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이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 대한 은자(隱者)의 답은 `지금'과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다.

3선 청주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던 한병수씨가 졸지에 운명을 달리했다. 갑자기 덮친 병마를 떨쳐내지 못하고 소천하면서 지역사회에 슬픔과 아쉬움이 크다.

고 한병수의원과는 개인적 인연이 짙다. 보험쟁이(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보험 영업에 열심이던 그는 늘 자신을 그렇게 낮추어 불렀다)를 거쳐 낯선 지역 언론의 세계에 몸담았으며, 지방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고인의 흥망성쇠는 나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런 한병수의원의 이름 앞에 `고(故)'자를 붙여야 하는 일은 애처롭기 그지없으며, 그와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이 사라졌다는 것이 못내 서럽다.

고인의 살아있는 동안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것이 `새벽'이다.

어느 해 여름날, 미처 어둠이 물러나지 않은 신 새벽에 명암저수지 둘레를 걸으며 쓰레기를 줍던 시커먼 사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고 한병수의원 이었다.

처음엔 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이 자신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며 일종의 통과의례일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그러나, 그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쓰레기를 줍고 동네를 청소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알게 되었다. 인적이 드문 새벽부터 `지금'을 만들어 가던 그의 행적은 동네와 주민들에게 지방자치의 근간을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고인을 재기 넘치는 인물로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무뚝뚝하며 말재주 또한 뛰어나지도 않은데다 말수도 적으니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어김없이 나타나고, 맨 먼저 시작해 가장 늦게까지 바지런을 떨었다.

그의 그런 행적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톨스토이의 두 번째 의문에 대한 실천적 답변에 해당할 것이다.

깨끗한 동네,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몸과 마음은 두루 사람을 향한 것이고, 지방자치는 의회 권력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는 호흡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확신한 고인의 신념으로 기억해야 한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일'은 논리적이거나 계산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의 종류와 조직 및 운영, 주민의 지방자치행정 참여에 관한 사항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기본적인 관계를 정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을 민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며,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목적은 그리 정치적이지 않으나, 우리의 지방자치는 지나치게 정치적이다.

그의 죽음으로 어지러운 정치적 싸움은 예고되어 있고, 해당 선거구 주민은 물론 나머지 시민들 모두가 그 난투의 여파로 행복할 수 없는 `지금'의 시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지금'의 삶이 끝났으므로 비롯된 죽음은 그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기억으로 새로운 시작이 되어 영원히 남을 수 있다. 깨끗하고 우직한 세상,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한병수의 지방자치.

오래된 책 <성자가 된 청소부>가 여태 있을까. 벽장을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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