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 철폐, 대학 평준화
학벌 철폐, 대학 평준화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14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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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교육 칼럼
오 희 진 회장 <환경과 생명 지키는 교사모임>

아직 학교 안에 있다. 정상적인 하루의 교육과정 활동이 끝났음에도 고등학생들은 학교에 남겨져 있다. 9월의 저녁 무렵 벌써 선선해진 공기는 지는 해를 저만치 밀어 그 사이에 자연의 신비와 두려움을 담아낸다. 그 중 눈에 차는 저녁놀은 보는 이에게 놀라움과 정겨움이 뒤섞인 광경을 다양하게 서쪽 하늘에 펼쳐 보인다. 눈 있는 자는 보아라. 그것은 어쩌면 지상의 삶을 반영하여 모든 이에게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게끔 하늘 장막에 영사하는 환상처럼 보인다. 하늘은 언제나 인간의 상상력의 거울이었음을 상기해보라. 사람은 그 붉은 하늘의 파노라마에서 자기 자신 안의 타자를 보며 경탄과 함께 그 두려움이 구경 끝에 매듭되는 경험을 반드시 하게 된다.

그것은 이제껏 알던 세계에서 멀찌감치 나아가 다른 세상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되는 경외의 순간인 것이니, 학생에게 비유하면 책과 현실의 조우와 같다. 즉 학생에게 '책에서 읽은 것을 삶의 경험과 연결시키는 단계'(마일스 호튼)로서 아주 독특한 맛, 바로 창조와 재창조의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주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 '공부'(프레이리)의 처음이라 할 것이다. 또한 하늘이 연출하는 사람과 자연의 진한 만남을 통해 배움의 궁극에 이르는 방편이 사실은 어디에나 널려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공자가 가르치는 '계발'(분발하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으며, 뜻은 있으나 말하지 않으면 이끌어 주지 않는다)의 적극적 의미이며, 이어지는 해설인 '사각형의 한 모서리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나머지 세 모서리의 문제도 자연히 풀 수 있다는 뜻'(송두율)에서 계발의 진면목인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오늘의 학창은 눈을 들어 자신의 하늘과 자신의 저녁 해를 바라볼 수 없게 닫혀 있으니. 다시 오늘의 학교는 갈수록 학벌과 학력으로 끊임없이 사람의 삶을 차별하는 바깥 세상에 둘러싸여 진공이 된 채 이른 저녁부터 입시지옥에 던져져 있으니, 행여 학교 창문이 열려 있다 한들, 그 옥상에 오른다 한들 저 계발의 하늘을 '만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서천서역에 이르는 고난의 바리데기의 생명의 길을 좇아 붉은 가슴을 거기 물들일 신심을 낼 수 없음에 학교의 사람들은 이 사태를 짐짓 외면한 채 책상 앞에 엎드린다. 물론 오래되고 오히려 가속이 붙은 이 교육위기를 건강하고 새롭게 만드는 지식체계의 구성이 간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제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새로운 사고를 실험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가 인정하는 대로만 생각하고 그래서 마음을 열어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교육위기라는 말이 이미 회자되는 현실 인식임을 감안하면 벌써 위기의 해결이 희망의 교육으로 거듭났어야 한다. 그러나 온 나라를 멍에로 꽁꽁 묶고 있는 이 위기의 교육을 두고 저마다 해결한다는 교묘한 재주가 오히려 그 멍에를 더 강하게 매듭지음으로써 예언된 일도양단, '사람의 교육'을 앞당기게 하는 중이다. 우리는 미지근한 물에 넣어진 채 점차 조금씩 온도를 높여 가열되는 입시경쟁의 도가니에서 헤엄치며 소수만이 살아남는 기회의 자유에 자기최면을 걸고 그만 끓는 물속에서 죽어가는 개구리 처지가 될 것인가. 그 멍에를 단칼에 쳐내는 것으로 매듭을 풀어내어 가벼워진 동작으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인간의 가치를 함께 지켜내는 온전한 교육의 자리로 펄쩍 되돌아올 것인가. 오늘 참담한 한국교육의 모순을 바람에 날려버리기 위해 학벌철폐, 대학평준화라는 희망의 깃발을 자전거에 꽂고 대장정에 나선 이들을 좇는 것은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이 이 지옥의 환상 속에서 다시 생명수를 알아보는 마음을 얻는 필사회생의 희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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