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의 처세술
억새의 처세술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3.02.05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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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무심천 둔치의 억새가 알랑거리며 바람의 비위를 맞추고 있다. 억새는 자신의 잎에 앉아 노래 부르는 풀벌레의 장단에 춤을 춘다. 하늘을 날던 잠자리가 지쳐 억새 잎에 앉아 쉬고 있다. 억새는 자신의 품에 날아든 잠자리와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바람에 알랑댄다. 바람의 비위를 맞추며 알랑거리는 억새를 바라보며 잊었던 내 안의 나를 만났다.

불가 용어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시기가 돼야 일어난다. 어떠한 인연이든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날 수 없다.

사람과 물건의 만남도 그때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으면 바로 옆에 두고도 손에 넣을 수 없다. 반대로 아무리 붙잡아도 떠날 것은 떠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진다. 불교에서 인연이란 인(因)과 연(緣)을 아울러 이르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과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을 이르는 의미라고 한다.

인연이란 원인에 의한 결과로 그 원인은 바로 자신이 만든다는 것이다. 좋은 인연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요, 나쁜 인연도 자신이 만드는 것이니 누구를 탓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좋은 인연만 만나고 싶어 한다. 사실은 좋은 인연은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좋은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것을 자기가 운이 없는 탓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과 스치고 지나간 그 많은 사람 중에 내가 만드는 인연은 사실 많지 않다. 그것도 좋은 인연을 만들기란 보통 공이 들고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자칫하면 좋은 인연보다 나쁜 인연으로 발전하기가 더 쉽다. 조금만 소홀히 하든지 마음에 상처라도 주면 어쩌지 못하고 나쁜 인연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아무리 싫은 사람도 그 사람과의 만남은 자신의 마음에 싫은 마음과 만나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도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이 타인의 마음에 투영되는 것이다. 욕망 가득 안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인생 무심히 흐르는 강물에 욕심 한 덩이 슬며시 내려놓는다.

계절의 향기를 나르는 바람 소리를 들어 본다. 풀벌레의 노래와 곤충들의 춤사위에 몸을 맡겨본다. 계절마다 다르게 펼치는 철새들의 군무와 억새의 몸짓을 본다. 자연의 노래를 듣고 계절의 환희에 취한다.

잠시 삶의 근심에서 벗어나 자연인이 되어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찾아온 인연들에 무심천에 흐르는 물같이 대하였는지 생각한다. 그동안 맺은 인연들에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야겠다. 자연의 미소로 자아를 다독이며 시절 인연을 알아가는 행복을 만끽했다.

억새는 자신의 품으로 날아든 풀벌레와 곤충을 위해 자신을 낮추며 한없이 바람에 알랑거린다. 인연을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평범한 진리를 억새는 몸소 실천한다. 자신에 찾아온 인연을 우러러 받드는 자연의 겸손에서 살면서 놓쳤던 억새의 처세술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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