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이 그리운 것을!
군중이 그리운 것을!
  •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 승인 2023.02.0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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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릇에 담긴 우리 이야기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구숙진 KPCA 그림책 지도사

 

전염병이 세계를 휩쓸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축소되기는 했으나 사회, 경제, 문화, 산업까지 생활 전반에 걸쳐 커다란 변화가 발생했다. 특히 야외활동에 제한이 생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 머무르며 보냈다. 기존 집의 기능인 휴식과 가족 간의 유대 공간임은 물론 업무, 학습, 운동, 취미 등 활용을 무한 확장 시키며 집단사회성에 대한 욕구를 대체하려 애쓰며 지냈다. 홈캉스, 호캉스, 스테이케이션은 그 대체제로 나만의 개성을 살려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으며 또 다른 사회 현상으로 대두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사회성은 집의 기능을 확장 시켜가며 애써도 충족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엔데믹 상태로 전환되며 열린 크고 작은 행사에 마음이 끌리는 걸 보니 말이다. 군중 속으로 스며들길 희망하는 본성은 대대로 내려오며 DNA에 축적되어 온 듯하다. 무리 지어 이동 생활하며 그들이 있는 터전을 집이라 여겼고 그 속에 있음으로 안정을 찾으니 무리로 향하는 본능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이 과정을 동물들의 삶에 비유하여 그려낸 그림책이 있다.

<우리, 집/진주·진경 지음/고래뱃속>의 앞표지와 속표지를 넘기면 회색 건물 숲 한가운데 싱그러운 초록 나무들과 단정하고 화려한 색의 집들이 자리하고 있는 공간을 보여준다. 동물들이 사는 도심 속 동물원이다. 동물들은 각자의 집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우아하게 차를 마시며, 크고 넓은 집에서 편안하게 지낸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으니,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이런 곳이 `우리, 집입니다.'라고 동물들은 소개한다.

우리 집들도 그렇게 변모하고 있다. 이미 갖추고 있거나 설혹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하더라도 전화나 인터넷으로 요구하고 대가를 치르면 애써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무엇이든 채울 수 있다.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안락한 집에서 편안하게 누리며 살 수 있게 진화하고 있다.

기술은 수 시간 아니 수초마다 발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수천 년을 거쳐 발달해 온 인간의 본성은 수년 혹은 수십 년 가지고는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듯 진화하고 있다. 이는 동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집입니다.'라는 문구에서 독자는 여러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집에 대한 자부심이나 애착이 있다면 자랑하고 싶을 것이고, 집 꾸밈이 만족스러우면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할 것이다. 그 감정은, 소설이라면 글의 앞뒤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다. 허나, <우리, 집>은 그림책이다. 그림과 글 모두로 가능하단 얘기다. 또한 없음으로도 가능하다. 이 장면이 그렇다. 하얀 백지 한쪽에 `우리,' 그리고 그다음 쪽에 `집입니다.'란 글자만 선명히 박혀있다. 화려한 그림이나 수려한 문장의 꾸밈이 없는 공간에 쓰여 있는 문장은 보는 이로 하여금 동물들의 허무함을 읽게 할 작가의 요량이 보이는 대목이다.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다면 초록도 무채색으로 느껴질 것이고, 달린다 한들 해방감은 밑바닥에 눌려 있을 테고, 안전함은 무료함으로 와 닿을 것이다. 우리 사람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향유 할 공간이 제한을 받고, 행동반경이 정해진 곳이 우리가 머물러야 할 `우리, 집'이고 `우리, 사회'라면! 초록도 회색으로 보일 것이고 회색 건물은 더욱 차게 와 닿을 것이다.

동물들의 본성을 끄집어내며 살 수 있는 곳이 자연이라면 사람의 본성을 풀어내는 곳은 무리가 있는 `우리, 사회'임이 자명하다. 나만의 공간인 우리 집, 우리의 공간인 밝은 사회에서 건강한 본성이 채워지길 기대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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