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곶
호미곶
  • 반영호 시인
  • 승인 2023.02.0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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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정월 초하루. 아들 내외와 손자손녀를 데리고 해맞이를 하러 호미곶을 갔다. 호미곶은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동해면, 호미곶면에 속하며 서쪽은 영일만, 동쪽은 동해에 접한다.

해맞이를 외지에서 경험하는 것은 처음이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고향에서 직접 행사를 주관했었다. 내게 연말연시는 그야말로 죽엄과 같은 때였다. 연중 가장 추울 때 두 가지 행사를 치러야만 했는데 제야의 타종을 마치자마자 수정산 꼭대기로 이동하여 해맞이 행사를 준비해야만 했다.

내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하는 입장에서의 해맞이는 똑 같은 일출장면을 보더라도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장엄한 일출장면을 감상하는 관람자는 감동에 젖어 행복을 만끽할 수 있지만 행사 주관자는 긴장속에서 조마조마한 나머지 일출 장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

호미곶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다. 호미곶 등대로도 유명한데 호미곶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南師古)가 `산수비경(山水秘境)'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기술하였다.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 최동단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여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고 기록하였다. 일명 장기곶, 동외곶(冬外串)이라고도 한다.

나는 줄곧 호미곶이 아니라 토끼묘(卯) 묘미곶이라 이름 붙여야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은 올해가 토끼해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호랑이꼬리는 길다. 호미곶의 크기로는 토끼꼬리에 비유돼야 할 만큼 작다. 호미곶에서의 해맞이하는 동안 나는 호랑이 꼬리보다는 토끼꼬리를 생각했다. 물론 남사고가 한반도를 포호하는 호랑이 상으로 표현하고 싶었듯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호랑이로 생각하고 싶을 것은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옛 설화에 나오는 토끼와 호랑이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토끼 눈은 왜 빨갛게 보일까?

토끼 눈이 빨갛게 된 유래는 호랑이와 토끼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옛날에는 토끼 꼬리가 길고 호랑이 꼬리는 짧았다고 한다. 토끼가 호랑이 앞에서 긴 꼬리를 자랑하니까 호랑이가 꼬리를 나누어 달라고 졸랐고 이에 토끼는 차라리 꼬리를 서로 묶어 다니자고 했다. 그 뒤로 둘은 꼬리를 묶고 함께 다녔는데 한 번은 토끼가 가고 싶은 곳이 있어 그쪽으로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호랑이가 꿈쩍도 안하는 것이었다. 토끼는 억지로 힘을 주며 호랑이를 끌었고 그러다가 눈이 빨개지고 꼬리가 몽땅 빠져 토끼의 꼬리가 짧아지게 됐다. 게다가 꼬리가 빠지면서 앞으로 튕겨 나가 바윗돌에 얼굴을 부딪쳐 토끼의 입이 세 갈래로 찢어지게 됐다고. 이후부터 호랑이는 토끼의 꼬리가 붙어 길어졌다는 설화가 있다.

네 살배기 손자와 여섯 살배기 손녀에게 호랑이 꼬리와 토끼꼬리에 대하여 백 마디를 애기해 줘도 못 알아 듣는다. 그저 호랑이 애기를 하면 `어흥' 무섭다 하고 토끼애기가 나오면 `깡총깡총' 귀엽다고 만 한다.

토끼띠 정초에 호랑이 꼬리, 호미곶에 와서 계묘의 첫 일출을 보며 호랑이와 토끼를 생각해보는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호미곶 일출을 보며 “수억 번 뜨고 졌어도 다시 뜨면 순결해” 열다섯 자 단장시조를 읊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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