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쓰레기통에 웬 명절 음식이?
휴게소 쓰레기통에 웬 명절 음식이?
  • 신진영 충북노인회 부장
  • 승인 2023.01.3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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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신진영 충북노인회 부장
신진영 충북노인회 부장

 

올해 설은 코로나19로 몇 년을 거르고 나서 맛본 명절다운 명절이었다. 전 국민이 한풀이라도 하듯 연휴 기간 내내 전국 고속도로가 귀성 차량들로 붐볐다고 한다.

고속도로에서 차량 정체로 도로 위에 묶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고속도로 휴게실은 사막 길을 가다가 만나는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차량에 갇혔다가 굳어진 몸도 풀고 생리현상 해결도 할 겸 휴게소는 방앗간을 찾는 참새떼 같은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거기서 있었던 일화들도 명절 뒤 화젯거리로 곧잘 오르내린다.

명절 황금연휴 뒤의 사무실 티타임은 그런 명절 뒷얘기들로 깨가 쏟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올해는 전에 없던 이야기 하나를 듣고 마음이 개운치 못한 일이 있었다.

며칠 전 옆 사무실인 취업센터에서 티타임을 갖고 있는데 80대 어르신이 박카스를 들고 인사차 들어오셨다. 센터의 취업 알선으로 고속도로 휴게소 미화원으로 취업하게 돼 감사드릴 겸 들렀다고 하시며 연휴 기간 겪고 본 일을 들려주셨다.

그분 얘긴즉슨 설 명절 후 며칠간 휴게소 쓰레기통이 버린 명절 음식으로 산더미가 되더라는 얘기였다.

“차 안에서 먹다가 남은 거겠죠? 그렇다고 차량 쓰레기를 거기 버리나…?”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드는데 어르신 말씀은 그것도 아니었다.

“그게 아녀. 말짱한 음식들을 검은 봉지째 버렸더라니께.”

어르신은 연신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아니라 했다.

“하도 멀쩡혀서 그냥 못 버리겠더라구. 그래서 우짤 수도 없이 멀쩡한 음식은 집에 가져왔어. 내가 먹으려구….”

듣다 보니 그것들을 하나라도 더 담아 보내려고 봉지마다 챙겨 넣는 시골 부모님들의 모습들이 눈에 밟혔다. 집집마다 명절에 고향을 다녀온 후면 냉장고 안에 두었던 음식들이 다 바꾸게 된다는 얘기들을 듣고 나도 공감도 했었다.

추석과 설마다 고향 집에 다녀오면 미처 다 먹을 수도 없는 명절 음식들로 가득 채우고 다음 명절 때까지도 어쩌지 못해 냉동고에 삐져나올 정도로 넣어 두었다가 얘기…. 그러면서도 부모님이 싸주시는 음식을 거절하지 못해 마지못해 가져와 그 마음을 냉장고 가득히 채워둔다는 얘기들이었다.

요즘 명절 풍속도가 예전과 많이 달라지고 있는 점들은 자연스런 시대조류로 여겨지기도 한다.

농경시대 제례를 21세기에도 맹목적으로 답습하는 것만이 미풍은 아닐 것이다. 어떤 집안은 명절 차례를 가족여행을 하며 모신다고도 하고 또 어떤 집은 가족회의를 거쳐 제례 방식을 현대식으로 바꾸었다고도 한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고 풍속도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부모님이 챙겨주신 음식들을, 아니 부모님의 마음을 쉽게 내버리는 소행은,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그냥 못 본 채 넘길 수가 없다.

얼마 전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동치미를 먹어보라고 주셨는데 너무 익숙한 맛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그 맛이었다. 역시 시골 음식은 토속적일수록 입에 익고 온몸으로 맛보는 고향 맛이다.

이제 다음 명절부터는 시골 부모님의 정성 어린 명절 음식들을 휴게소 쓰레기통에서 만나게 되는 그런 마음 짠한 일들이 더 이상 없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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