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와 범여권
완행열차와 범여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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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 경 훈<정치행정부장>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중략…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중략…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허영자 시인의 '완행열차'라는 시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해 민주당 등 소위 범여권이 정치부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 부전지(附箋紙)에 즐겨 쓰는 시구다.

우여곡절 끝에 신당을 만들고, 컷오프를 마치고 5명의 후보가 본경선에 돌입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합동연설회와 방송토론회 등이 열리면서 5명의 주자들의 대권행보가 분주하다.

그러나 바쁜 만큼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 문제다. 오죽했으면 '완행열차'라는 시가 애용될 정도인가 싶다. 이들에게 이번 대선은 완행열차인 것이다.

이제 대선까지는 3개월 남았다. 한나라당은 이번주 D-100일을 선언하고 골인지점을 향해 줄기차게 뛰고 있다.

컷오프를 통해 본경선에 나섰으나 신당은 좀처럼 흥행몰이를 하지 못한 채 지지율은 제자리다. 몸이 달았을 법한데 완행열차로 위안을 삼고, 종착점에서는 우리가 분명히 이길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만 하고 있다.

유시민 후보는 이번주 초 청주 합동연설회에서 한나라당에서 3등한 후보를 본선에 내보낸다고 1등 하겠느냐며 손학규 후보를 공격했다. 또 정동영 후보를 향해서는 5년 동안 대선운동을 해서 5% 지지도면, 50% 가려면 50년이 걸린다고 비꼬았다.

선두를 달리는 손학규·정동영 후보의 여론조사 지지도가 여전히 10%대 벽을 넘지 못한다. 반면 경선을 끝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여전히 50%를 유지하고 있다.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볼 수 없는 현상이 대선 3개월 남은 시점에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권은 대선구도를 뒤바꿀 만한 돌출변수 찾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상황을 바꿀 만한 돌출변수는 고사하고 되래 악화되는 꼴이다.

가뜩이나 갈길 바쁜 친노주자들은 하필이면 이런 시기에 변양균, 신정아 스캔들이 터져나오면서 올 대선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한탄을 한다.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참으로 할말이 없게 됐다고 할 정도다. 한나라당을 상대해야하는 신당의 입장이 점점 더 난처해졌다.

그렇다면 2002년 비슷한 시기의 대선 상황은 어떠했나.

후보 선출 뒤 5월까지 5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노무현 후보가 D-3개월 시점에서 지지율이 20%까지 급락했다. 대세론의 이회창 후보도 연초 50%를 넘던 지지율이 '가회동 빌라게이트'와 원정출산 의혹 등으로 30∼35%대에 머물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월드컵 4강 신화'로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정몽준 의원이 그해 7월 출마를 선언했다. 정 의원 지지율은 일부 여론조사 결과 당시 시점에 29.5%까지 치솟으며, 이 후보를 압박했다. 결국 이 후보는 아슬아슬한 선두를 이어갔지만 승리를 점칠 수 없을 정도였다.

당시 대선에 대한 관심은 3개월 앞에서부터 최고조에 이르렀다. 엎치락 뒤치락이 이뤄지는 시기였다.

그러나 2007대선은 어떤 모습인가.

이명박 홀로 50%가 무려 10개월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재미없는 대선이다.

그럼에도 대선구도가 이렇게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은 역시 드물다. 범여권 후보 단일화 변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범여권은 아직도 완행열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 이제는 완행열차가 아니라 급행열차로 바꿔 타야할 때가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들은 대선이란 축제에 동참할 수 있는 시간을 빨리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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