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중지 '티처보이' 기르기
애지중지 '티처보이' 기르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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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김 병 우 <충청북도 교육위원회 위원>

'마마보이(mamma's boy)'나 마마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파보이나 파파걸도 마찬가지다.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매사를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아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아이들은 무슨 일이 닥치면 부모 눈치부터 살핀다. 매사 자신이 없어 항상 불안해하며, 울상을 지은 채 징징대고 칭얼거리기 일쑤다. 어머니의 치마폭이나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호칭도 엄마, 아빠라는 유아어를 입에 달고 산다.

예전에도 이런 아이들은 있었다. '치마폭 아이'나 '응석받이'로 불리던 아이들이다. 이런 유형은 자손이 귀한 집안에 나서 애지중지하던 아이들 중에 많았다. 쥐면 터질세라 불면 날아갈세라 품어 키운 아이들. 그들은 숟가락 잡을 나이가 되어도 젖을 떼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도 코흘리개 티를 벗지 못했다. 만년 철부지.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일종의 장애다. 자아의 성숙에 발달과업인 자율성과 자주성이 결핍되어 제 홀로는 고치를 짓지 못하고 애벌레에 머물고 만 탈바꿈 불능 장애!

현대로 들어 집집마다 자녀수가 급격히 줄면서 모든 집의 자녀들이 금동이·옥동이가 되었고, 부모들의 과보호와 익애가 넘쳐나게 되었다.

한때는 "귀하게 자란 아이가 귀하게 된다"는 자녀교육 강좌가 자모들에게 과잉보호를 부추기더니, 요즘은 아동용품 업체들의 'VIB(Very Important Baby)마케팅'과 '명품 육아 바람'이 극성이라고 한다. 업자들의 상혼이 젊은 엄마들의 허영기를 부채질 해 집집의 귀한 아이들을 '명품 애벌레'들로 만들어갈 모양이다.

마마보이, 파파걸로 길러진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 당연히 티처보이(teacher's boy), 티처걸 들이 된다. 누가 가르치거나 시켜주지 않으면 스스로는 공부를 할 수 없는 아이. 이름 하여 '자기주도적인 학습'이 불가능한 아이들이다.

이 정도가 되면 부모들 또한 아이들을 혼자 놓아두고는 불안해 견디지를 못한다. 학교든 학원이든 아이들을 줄곧 맡아줄 곳이 있어야만 마음이 놓인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아이가 그렇게 잘 못 길러져서'가 아니라 '내 아이가 특별해서'다.

이제서라도 아이에게 스스로 공부하도록 기회를 주는 교육이 필요하건만, 아이가 '족집게 답'을 앵무새처럼 외거나 말거나 점수만 잘 받아내면 그만이다. 아이들을 통제의 틀 속에 묶어 가두더라도 '점수벌레'를 만들어 주기만 하면, 기대의 격에 맞는 '명품자녀'가 길러진 것으로 흡족해 한다.

그 기대에 어긋나는 어떠한 교육활동도 미심쩍고 불안하기만 하다. 학력신장을 강조하는 교사가 실력파 같고,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교사는 무능한 교사 같다.

어떻게든 아이들을 책상 앞에 잡아두려는 교사는 학생을 위하는 교사로 보이고, 보충수업이나 학원과외가 효과 없다는 교사는 무책임한 교사 같다. 아이들에게 한 자라도 더 가르치려고 애쓰는 교사가 열성파 같고, 아이들에게 배울 기회보다 스스로 익힐 기회를 더 주어야 한다는 교사는 '농땡이'교사 같다.

더구나, 요즘 학생들에게 공부할 시간보다 놀 시간, 쉴 시간, 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열을 올리는 교사들은 자기네가 편할 셈으로 저러지 싶어 못마땅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일그러진 학부모들의 교육관은 그 열의와 관심이 높으면 높을수록 아이들과 교사들을 더욱 깊은 질곡으로 몰아넣는다. 그렇게 애지중지한 결과가 마침내 티처보이를 만드는 일이라면, 그 맹목의 교육열이야말로 차라리 위험하고 불안한 것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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