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저편에
상실의 저편에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3.01.25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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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홀여, 그이의 보호자가 되었다. 늘 나의 보호자였던 그인데 이제 나와 역할이 바뀌었다. 둘은 의자에 앉아 호명을 기다리고 있다.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다 지쳐 보인다. 차례를 기다리느라 전광판을 뚫어져라 보는가 하면, 무표정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그저 멍하니 있는 이들도 보인다. 모두들 하나같이 어둡고 무겁다. 간호사의 부름에 진료실로 하나둘씩 들어간다.

오늘은 긴 기다림이 끝나는 날이다. 마지막 결과를 보러 온 둘은 긴장한다. 판사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떨린다. 의사의 선고에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공간으로 간호사는 우리를 불러들인다. 실낱같은 희망이 통째로 날아가고 있다. 수없이 다독였건만 억장이 무너진다.

3개월 동안 피를 말렸다. 남들은 CT만으로도 안다는데 MRI로도 보여주지 않았다. 애를 다 태우고 지쳐 떨어질 무렵에서야 조직검사로 정체를 드러낸 놈이었다. 그이는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울까. 내가 좌절한다면 그이는 절망할 것이다. 나마저 정신을 놓으면 우리 가족은 뿌리째 흔들릴지도 모른다. 마음의 고삐를 바짝 움켜쥔다. 끝까지 설명을 듣고 수술 날을 잡는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수다쟁이가 된다. 그이의 기분이 가라앉는 게 겁이 나서 마구 말을 늘어놓는다. 끝에 들려준 의사의 말은 한 줄기 빛이었다. 치료만 잘 받으면 오히려 전보다 더 건강한 삶을 산다고 했다. 아프면서 금주와 금연을 하고 자기 몸에 신경을 써서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절실한 희망이었다.

처음에 그이는 이상소견이 나오자 대수롭지 않아 했다. 병원에서의 검사가 늘어나고 길어지니 나를 원망하듯 했다. 모르는 게 약인데 괜히 받게 해서 피곤하게 만들었다고 원망하듯 했다. 조직검사를 하고 온 날로부터 이 말이 사라졌다. 사태의 심각성에 금연도 시작했다. 나도 미련 없이 속으로 명퇴를 결정했다. 그이의 케어를 위한 준비로 선택한 것이다.

오늘부터 그이의 밑바닥에 항상 불안이 침잠해 있는 채로 살아야 한다. 그것은 공포가 되어 때때로 그이를 공격할 것이다. 순간순간 나에게도 두려움이 찾아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치료를 끝내는 날까지 하루하루가 불안한 날들이다. 지금부터 마음을 단단히 무장해야 한다.

프랑스 작가 보브나르그는 “절망은 희망보다 더 사기꾼이다”라고 했다. 희망 때문에 좌절하건 절망 때문에 좌절하건 모두 가능성의 게임이지만 아무리 낮은 가능성일지라도 반전의 기회는 희망에게만 있음을 말한다. 기회조차도 얻지 못하는 사기꾼에게 나를 베팅할 수는 없다.

신은 우리를 죽이기 위해 절망을 보내는 게 아니다. 새로운 삶에 눈을 뜨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그이는 건강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건강검진도 귀찮아하여 내 속을 썩였다.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재작년에는 나만 혼자서 했다. 지난해에도 가기 싫어하는 걸 엄포를 놓다시피 하여 같이 한 검진이었다. 잃어버리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건강이다. 신은 우리에게 상실 후의 깨침을 주려는 의도였으리라.

내 인생의 모든 구간을 차지했던 저체중. 그 몸으로 나를 지탱해 온건 깡이었다. 내가 보아온 엄마가 그랬다. 유전으로 물려받은 나의 깡으로 이겨낼 것이다. 그이가 약해져 무너지려 할 때마다, 아프게 사투를 벌일 때마다 옆에서 함께 견뎌낼 것이다. 나는 믿는다. 상실의 시간이 흘러가면 그 너머에 기다리고 있을 우리의 가을날을. 더 고운 단풍으로 물든 시간이 반겨줄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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