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들다
줄어들다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23.01.24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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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다시 가득 채운다. 겨울철이라 집안이 건조한 것 같아 가습기 역할 겸 넓은 그릇에 물을 담아두는 버릇 때문이다. 신기할 만큼 사라지는 물의 양을 보며 여러 가지 상념에 젖어든다. 그것은 변화였다. 보고도 느끼지 못하던 삶의 테두리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줄어드는 것이 어디 저 그릇의 물 뿐이겠는가. 안타깝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라지는 인연들이라는 것을 감지한다. 부모형제도 이 땅을 떠나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더불어 살던 가까운 이들마저 멀어져가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영원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생소하게 다가와 삶의 뒤안길을 뒤척이게 만들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랴.

인정해야만 한다. 머릿속에 꽉 채워진 생각들이 때로는 일상을 흐리게 만들어 놓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적당히 가벼워지는 것도 괜찮지 싶다. 무거웠기에 살아오는 동안 잘못된 판단으로 균형을 잃기도 했으며 수습해내느라 골몰했던 지난날들이 저만큼 다가온다. 미완의 형상인 내가 그곳에 서있을 뿐이다. 사람의 됨됨이가 그 모습만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내려놓을 것과 다시 올려놓아야 하는 것들에 대해 들여다본다.

바쁘게 살아온 날들이다. 누구나가 하루하루의 삶은 꽉 차있는 그릇의 물과도 다름없다. 시간이 흐르고 외부공기의 변화에 따라 차츰 줄어드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저 그릇에는 물을 채우면 그만이지만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골몰하기에 이르렀다.

노랫말처럼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고 했다. 그것은 흔히들 정신세계의 모든 면이 풍요로워야 하는 것을 두고 말하지 싶다. 자신으로부터 주변에까지 퍼져나가는 따뜻한 전율이라 여긴다. 부딪히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는 것은 외부적인 작용보다 자신과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일이 더 중요하리라.

이제는 내 삶의 부피도 훤하게 줄어들어 갔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밀려드는 어떤 상실감보다 남아있을 기회의 모든 것에 의미를 두며 지내려 다짐한다. 담담하게 그릇의 물을 채우듯 새로운 의식의 길로 들어서서 가벼워지도록 애쓰고자 한다.

눈에 보이는 물의 질량에서 가라앉은 삶을 발견하며 다듬어가는 순간이다.

오늘도 여전히 물을 채운다. 반면 적으로 줄어든 양 만큼 욕심을 비워가는 작업이라 하고 싶다. 현실적으로는 물이어도 또 다르게 헤아린다면 지나간 시간들이 부유하여서 얘기를 펼치는 것만 같아서다. 일상은 흘러갔어도 남겨진 흔적위에서 후회되는 여러 가지 언행들, 그리고 닳아져가는 육신과 정신세계가 새로운 눈을 뜨도록 등 뒤에서 흔드는 기분이다. 걷어버려야 할 것과 침잠시켜야 할 것들을 생각해본다.

물의 실체는 이렇게 어제와 오늘 또 내일로 교차해 와서 나를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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