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서 얻는 깨달음
늙어서 얻는 깨달음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01.18 1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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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세월의 빠름을 절감하니 늙었나 봅니다. 아침인가 하면 어느새 저녁이고, 월요인가 하면 어느새 일요일이고, 봄인가 했는데 어느새 겨울이고, 60인가 했는데 어느새 70이니 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전의 팔팔했던 몸은 간데없고 산부인과만 없는 움직이는 종합병동이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참담하기도 합니다.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데 몸과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니 별수 없이 늙은이입니다.

아시다시피 늙음은 한창때를 지나 몸이 쇠퇴해지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늙은이는 살만큼 산이란 의미와 죽을 날이 가까워진 노인네란 의미가 결합된 불경스러운 호칭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일러 세월이라 합니다. 오고 가는 세월은 변함이 없는데 늙은이들은 빨리 간다고 한탄하고, 갈 길 먼 젊은이들은 더디 간다고 투덜댑니다.

나이 든 숫자만큼 세월의 속도를 느끼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늙음은 조물주의 저주가 아닙니다. 조물주의 은총이자 자비입니다. 늙어보지도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된 수많은 영혼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100세 시대라곤 하지만 지구촌 인구의 8%가 65세를 경험한다는 엄혹한 사실이 이를 웅변합니다. 물론 늙으면 체력 저하, 정력 감퇴, 기억력·시력·청력의 떨어짐, 일선에서 물러남, 친구들의 줄어둠, 배우자와의 사별. 질병 같은 불편과 고통이 수반됩니다.

늙으면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통과의례입니다. 그런 노화현상들이 사는데 다행히 되는 아이러니를 봅니다. 만용이나 객기를 부리지 않아서, 잡다한 것 잊어서· 못 볼 것 덜 보아서·듣지 말아야 할 것 흘려들어서, 경쟁에서 자유로워서입니다..

암 같은 질병과 배우자와 친구들과의 사별과 빈곤은 노년의 최대 적이자 불행입니다. 빈곤은 국가와 지자체의 복지행정으로 일정부분 케어가 되지만 질병과 사별은 유비무환 외에 달리 방도가 없으니 담담히 받아들이고 병마와 고독과 벗하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있을 때, 건강할 때, 할 수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곱게 의연하게 행복하게 늙어가는 첩경이자 행불과 성패를 갈라놓는 가늠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부모님 살아계실 때 불효하거나 효도하지 않으면 후회막급의 멍에를 평생 짊어지게 됩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입신양명하면 잘 모시겠다는 건 하지 않겠다는 거와 진배없습니다. 그때까지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문안인사 자주 드리고 형편 되는대로 자식 된 도리를 하는 것이 있을 때 잘하는 겁니다.

배우자도, 친구도, 신세 진 고마운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건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할 때 잘해야 합니다. 젊을 때 건강을 오남용 하면 늙어서 저처럼 종합병동이 되고 맙니다.

그리되지 않으려면 과로, 과음, 과색과 과도한 경쟁을 절제해야 합니다. 늙어보면 압니다. 한 번 잃은 건강은 원상태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몸에 맞는 섭생과 운동을 꾸준히 해야 된다는 걸.

그리고 할 수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영향력 있는 자리에 있을 때 선한 영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것이 할 수 있을 때 잘하는 겁니다. 공직이든 기업이든 자영업이든 뭐든지 간에 할 수 있을 때 선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합니다. 사랑도 여행도 취미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퇴하고 늙고 병들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인생사입니다.

있을 때, 건강할 때, 할 수 있을 때 갈무리를 잘해서 멋지게 늙읍시다. 덕감사(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면 그리됩니다. 복된 늙음을 위하여 즐기편(즐겁게, 기쁘게, 편하게) 함따오(함께, 따뜻하게, 오래오래)!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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