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맞이
설날맞이
  •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 승인 2023.01.15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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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반지아 수필가·괴산 청안초 행정실장

 

새해가 밝았다. 누군가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활기차게 시작한 만큼 하루하루를 가득가득 채워가고 있을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그저 숫자 하나만 바뀌었을 뿐 고달픈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새해에 대한 온도 차가 이다지도 하늘과 땅처럼 다르건만 시간은 야속하게도 뚜벅뚜벅 자신만의 길을 걸어 어느새 1월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그리고 민족 대 명절인 설날이 연휴를 줄줄이 매달고 다가오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증세의 악화로 인해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해야만 했던 지난 2년간의 명절들을 돌이켜본다.

제각각 삶이 바빠 자주자주 연락도 못 하고,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져 살아 얼굴 한번 보기가 힘든 일상에서도 명절만큼은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웃음을 꽃피우던 우리에게 참 야속한 세월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이번 명절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싹튼다. 여전히 코로나는 고집스럽게도 사라지지 않고 잊을만하면 안 좋은 소식들로 들려오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방역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며 천천히 일상으로 돌아오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많은 일상이 회복되었고 한순간에 너무도 허망하게 잃어버린 우리의 명절 분위기 또한 제자리를 찾으려 한다.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지난주에 지인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며느리는 명절이 다가오는데 어떠신가요?” 반사적으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해외로 도피하고 싶습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폭소가 터졌다. 서로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주고받은 대화가 아니었기에 가볍게 웃으며 넘겼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에 마음이 씁쓸했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는 “그래도 코로나 덕분에 명절 증후군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는데 이제 다시 명절 지옥으로 돌아왔다.”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에, 사회에 해만 끼칠 것 같았던 코로나가 누군가에게는 예상치도 못했던 숨통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취업준비생에게, 미혼남녀들에게, 자녀계획이 없는 사람들에게 늘 가볍게 던져졌던 “왜 취업 안 하니”“왜 결혼 안 하니”“너무 늦기 전에 아이 하나쯤은 있어야지”와 같은 말들이 잠시 쉬어갔을 테니 말이다.

드디어 명절에 가족을 볼 수 있다는 크나큰 기쁨 뒤에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한숨이 켜켜이 쌓여 연휴는 반갑지만 `설날'은 피하고 싶은 아이러니한 소망이 얼굴을 내민다.

길다고 생각하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은 격리의 시간 동안 한자리에 모일 수 없었던 가족들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이번 설날이 기쁨의 시간으로만 채워졌으면 한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도 있듯이 그동안 보지 못한 시간을 핑계로 “너는 여태”라는 수식어를 붙여 누군가의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저 “얼굴이 좋아졌네” “이렇게 다시 보니 너무 반갑다.” “잘 지냈지”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더불어 명절 음식도 온 가족이 같이 지지고 볶고 만들고 부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덧붙여본다.

40년 만에 돌아온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에는 다가오는 설날뿐만 아니라 모든 날에 우리가 모두 토끼처럼 펄쩍 뛰어오를 수 있는 좋은 일들만 가득하게 해달라고 하느님도 부처님도 아니고 달나라 토끼에게 속삭여본다. 오늘따라 달빛이 참 밝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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