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구이 집 `털보네'
연탄구이 집 `털보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01.1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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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하루가 고단한 날, 남편과 가끔 그 집을 간다. 그 집은 `털보네 연탄구이'다. 그 집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꽃이 만발이다. 추운 겨울과 이른 봄만 빼면. 그 집은 음성천변 상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닿는다. 음성천변의 꽃들은 어느 해는 보라색의 수레국화, 또 어느 해는 색색의 개양귀비, 또 다른 해는 하늘하늘 코스모스, 오래전 어느 해는 소금을 뿌린 듯 하얀 메밀꽃이 천변을 장식했다. 올해는 형형색색의 백일홍이 음성천을 물들여 놓았다. 빨간색, 노란색, 분홍색, 하얀색, 딱히 무슨 색이라 말할 수 없는 꽃들도 있었다. 모양도 겹꽃, 외꽃이 섞이어 소담하기도 하고 단아하기도 하여 꽃들을 보는 재미가 쑬쑬하니 좋았다.

`털보네 연탄구이'는 음성천을 곁에 두었다. 추억이 그립고, 이야기가 고픈 날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허기를 달랜다. 그 집은 우리 집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천천히 걸으면 15분, 빨리 걸으면 10분 거리의 지척이다.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그 집 앞이다. 어느 날은 마당에 있는 모든 상에 만석이라 기다리는 날도 더러 있다.

계절마다 그 집에서 느끼는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분위기라고 할까? 봄이면 입구에 심어 논 수양꽃복숭아 나무가 진분홍 꽃가지를 낭창낭창 늘어트리고 손님을 유혹한다. 꽃에 취해 들어간 손님은 어느새 술에 취하고 사람에 취해 그 집을 나선다. 여름이면 그 집 마당 바닥은 물줄기로 시원하다. 더위에 지친 손님들을 위한 주인장의 배려다. 밤하늘 총총한 별들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귀를 쫑긋거린다. 가을은 음주담소의 계절, 선득한 바람이 불어온들 어떠하랴. 따뜻한 연탄에 구운 고기로 속을 채우고 마음을 데우면 부러울 게 없다. 마당은 겨울이면 잠을 잔다. 대신 집 안에서 더 가까이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온 벽을 장식했던 오래된 신문은 사람들의 추억을 소환하곤 했다. 살을 에는 추위도 걱정이 없다. 연탄불에 고기 한 점 구워 소주 한 잔 기울이다 보면 밖은 어느새 눈이 수북수북 쌓여 집 갈 걱정에 울상이 되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마음이 든든하니 이깟 눈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그 집은 담도 없고 대문도 없다. 사람도 짐승도 수나롭게 드나들 수 있는 집이다. 떠돌이 개들도 어찌 알았는지 즐겨 찾는 맛 집이다. 배가 불룩한 어미 개는 몇 년째 손님들과 정이 들어 배를 곯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개들이 보이지 않으면 어김없이 길고양이들이 그 집을 기웃기웃한다. 털보네 연탄구이', 그 집에는 털보가 살지 않는다. 대신 키 크고 후덕한 남자와 옹골차고 인심 좋은 여자가 부부로 살고 있다. 사람도 짐승도 그 집을 그리 쉬이 드나드는 데는 부부의 넉넉한 마음 씀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 집에서 먹는 고기와 술은 이상하게도 달다는 생각이 든다. 종일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시달림을 당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목청껏 이야기해도 누구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고된 하루, 어느 직장에서는 그 집에서 단체 회식을 종종 하기도 한다. 술을 마시다 노래도 부르고, 가끔 집 앞으로 나가 담배 한 대 피우고 숨을 돌리면 또다시 술잔이 돌고 노래가 이어지곤 했다. 그 어디에도 이렇게 즐겁고 맛있는 집은 없지 싶다.

맛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솜씨로 결정을 짓는다. 하지만 손님의 발길을 결정하는 데는 주인의 마음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박한 세상 고된 하루를 위로 받기 위해 사람들은 술을 마시러 간다. 그런데 단지 술 때문이 아닐 것이다. 발길이 저절로 향하는 데는 분명 사람냄새가 그립기 때문이다. 언니가 되기도 하고, 누나가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는 그 집의 주인장을 나도 몇 년 전부터 친구로 삼았다. 안주가 떨어지면 오징어를 구워주고, 술이 조금 모자란듯하면 자신들이 마시던 술을 슬그머니 밀어주는 털보네 연탄구이, 그 집은 분명 인정이 맛있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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