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길을 묻다
아바타, 길을 묻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1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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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불로장생은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궁극적이다.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긴 한데, 대체로 모두가 최우선으로 희망하는 것은 아니다.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면'에 대한 가정(假定)의 함수는 언제나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희망하는 자본의 실질적 탐욕에 비해 크지 않다. 늙지 않고 오래 사는 일보다 돈에 대한 욕망이 먼저일 것이라는 생각은 불로장생이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상식에서 비롯된다.

영원히 죽지 않는 `영생'이 아니라,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장생'에 집착하는 일 또한 `돈'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 욕망의 방향이며 순서가 되는 셈이다.

13년 만에 선보인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을 본 뒤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엉뚱하게도 나는 돈에 대한 인간 탐욕의 끝없음과 잔인함이 새삼 두려워졌다.

2009년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인류 영화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기념비적 작품의 반열에 올라있다. 전 지구인의 폭발적인 관심이 이어졌고, 당연히 극장을 찾은 관객의 숫자가 폭증한 만큼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적 사례로 손꼽힌다.

13년 전의 <아바타>는 영화적 재미와 첨단 촬영 기법 등 과학기술의 발전정도에 대한 놀라운 경험과 더불어 지구와 인류의 위기, 자원 전쟁, 속임수를 마다하지 않는 인간의 탐욕과 이에 맞서는 `양심'의 대립구도를 추구하는 상징적 교훈도 있다.

그해 우리는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대통령을 잃었으며, 개발독재의 탐욕은 용산에서 잔인하고 무모한 진압으로 철거민과 경찰의 목숨을 빼앗는 참극을 만들었다. 그때 스마트폰은 지금처럼 전 국민 필수품이 아니라 이동전화 수준이었고,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으며 미국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취임했다.

세월은 흐르고 흘러 2022년 12월 개봉한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은 속편이되 속편으로만 단정할 수 없는 새로운 길을 묻고 있다.

울울창창한 숲의 세계로 그려졌던 미지의 행성 `판도라'는 여전한데, 지구에서 버틸 수 없는 인간이 `생명공학'에 해당하는 기술을 통해 복수를 노리고, 아바타는 이를 피해 `물의 길'로 떠난다.

바다에는 고래처럼 생긴 종족이 있어 눈빛으로 소통하고, 뛰어난 지능과 예술 및 수학에 탁월한 능력을 뽐내고 있으나, 인간에게는 포경(捕鯨)의 대상일 뿐이다. 온갖 무기와 전투용 탈것을 동원해 고래를 살해한 뒤 인간이 남획하는 건 겨우 뇌수 한 병. 불로장생의 영약이라고 소개된 고래의 뇌수는 학살의 우두머리가 아닌 자본가에게 비싼 돈에 팔려갈 것이니, 그 상상의 세상에서도 `돈'말고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없다. 그것도 죽음을 무릅쓰면서도 쟁취해야 하는.

<아바타>가 13년, 14년이 지나 관객과 극장에서 만나는 지금. 편광 안경을 쓰고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만나는 3D영상은 `눈 앞의 일'같고, 바다 속 풍경은 경이로운데 호흡이 가빠지는 건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는 방역마스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사이 신종플루에 벌벌 떨던 기억은 아득하고 코로나19의 공포는 3년이 지나도록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은 채 마스크로부터의 불손한 해방선언으로 정치적 반전과 위기탈출을 노리는 정권에 살고 있다.

이동전화는 모든 것을 `스마트'하게 망라하면서 생존과 확인의 필수품이 되었고, 우리는 지금 메타버스와 플랫폼, 인공지능과 수소 및 전기차, 배달만능의 시대에 키오스크 앞에서 불안을 견디지 못해 끝내 발길을 돌려야 하는 서러운 노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아슬아슬하게 열린 골목길에서 젊은 국민 159명이 목숨을 잃었으나,`행정'과 `안전'이 명패에 뚜렷한 주무부처의 우두머리의 책임은 모호하고, 부자와 가난한 이들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는 세상.

상상은 때로 아름답거나 즐겁거나, 간혹 위기를 미리 알려, 각성을 하게 할 수도 있으나 지나치면 단순한 오락 또는 경각심을 희석시키는 신기루 같은 것.

`물의 길'에서 끊임없이 넘실거리는 `아바타'는 뿌리 깊은 숲의 `아바타'보다 훨씬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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