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할머니의 길
꼬부랑 할머니의 길
  • 김경수 시조시인
  • 승인 2023.01.10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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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경수 시조시인
김경수 시조시인

길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길은 누구에게나 발길을 허락했다. 하지만 길은 같은 길인데 누구에게나 같지 않았다. 누구에게는 편하고 쉬운 길이지만 누구에게는 험하고 어려운 길이었다. 어느 날 길이 막혔다. 길을 막은 사람은 꼬부랑 할머니였다. 길 한가운데서 꼬부랑 할머니가 아주 작은 수레에 흩어진 물건들을 주워담느라 차들이 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쓰레기나 다름없는 하잘 것 없는 물건들로 보였다. 차들은 정지한 채로 바쁨과 답답함을 할머니에게 눈초리와 야유로 던졌다.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아주 느릿한 동작으로 물건들을 하나하나 작은 수레에 담고 있었다. 수레는 할머니에게 분신이자 동업자와도 같았다. 꼬부랑 할머니는 수레가 없으면 거의 거동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꼬부라진 몸으로 빈 수레조차 끌고 가기도 버겁거늘 무언가를 수레에 주워담아 싣고 다녔다.

생존을 위해 그렇게라도 돈 몇 푼을 쥐어보고 싶은 심정에서였다. 그런 연유로 인해 싣고 가던 물건들이 흩어져 길을 막는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꼬부랑 할머니를 알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늘 지나는 길에서 드물지 않게 보는 이웃이라면 이웃이었다. 이런 일을 종종 접하는 철민은 이해를 하면서도 때론 짜증 나고 원망스럽기까지 했을 때도 있었다. 그날도 누구와의 약속시간을 뒤로 한 채 지켜보고 있어야만 할 상황이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의 눈에는 못마땅해 보일지 몰라도 할머니의 미안하고 조급한 마음은 가쁜 숨을 내쉬며 숨이 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얼추 주워담는 것을 보고 차들이 출발 준비를 서두를 무렵 할머니가 한 발자국 발을 떼려는 순간 공교롭게도 또다시 물건들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와르르 무너지듯 쏟아지고 말았다.

다급한 마음에 서둘러 담은 탓이겠지만 그만 또 그런 실수를 하고 만 것이었다. 사람들에게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할머니는 다시 물건들을 주우며 귀먹은 듯 눈이 먼 듯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수레에 싣고 있었다. 어찌 보면 누군가 할머니를 조금만이라도 거들어 준다면 길이 막히는 일은 그리 길고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실상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어느덧 할머니는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을 작은 수레에 다 싣고 한 숨을 내 쉬었다. 물건이라고 해야 몇 개 되지 않는 물건, 돈으로 바꿔봤자 고작 얼마 되지 않는 물건, 그러나 사람들 눈에는 하찮은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할머니에겐 소중한 물건들, 꼬부랑 할머니는 수레를 잡고 움직였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수레바퀴가 굴러갔다. 차들도 움직였다. 한 바퀴 두 바퀴 차바퀴도 굴러갔다. 어두컴컴한 겨울 초저녁 꼬부랑 할머니는 수레를 끌고 꼬부랑 고갯길을 넘어갔다.

삶이 가는 길목에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고 저런 일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나 즐거운 일이라면 다행스럽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곤란함과 당혹스러움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와 사고로 어려움을 만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가 요구될 때가 있다.

하지만, 때론 무관심과 불만으로 외면당하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그러므로 상호존중의 포용과 배려가 모두를 위한 아름다운 길을 만들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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