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를 둘러싼 두가지 잣대
‘절도’를 둘러싼 두가지 잣대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12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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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김 남 균 <민주노총충북본부 前 사무처장>

'유전무죄, 무전유죄'. 혹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대한민국 법은 만명에게만 평등하다'는 이 말이 다시 한 번 현실에서 나래비로 등장했다.

수백원의 회사돈을 빼돌린 혐의의 정몽구 현대차그룹회장, 수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의 정대근 농협중앙회장,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쇠파이프로 폭행하고 사람을 감금한 혐의의 김승연 한화그룹회장, 줄줄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내 주변의 노동자들 입에선, 아니 보통의 시민들 입에선 '역시나' 하고 탄식과 욕설이 튀어나온다.

현대차그룹 정몽구회장에 대한 '사회공헌 약속을 지키고 윤리경영을 주제로 일간지에 기고하고 강연하라'. 이 놀랍도록 창조적인 사회봉사명령에 대해서 사람들은 '신문모독'이라며 조롱했다.

어슴푸레 기억이 떠오르는데 아마도 한 칠, 팔년 되었을 거다. 청주공단의 한 제과업체에서 있었던 어떤 여성노동자의 일이다. 사소한 불량이 난 제품인데 그게 그냥 소각처리되는게 너무나 아까워 보였단다. 그래서 시가로 하면 한 몇천원쯤 하는 이 불량과자 몇상자를 몰래 담장에 숨겨놓았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담장에 숨겨 논 과자를 챙기는 순간 아뿔싸! 회사 관리자에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회사 제품에 대한 절도사유로 해고됐다. 그녀는 억울해 했지만, 회사제품이 크던 작던, 액수가 크건 작건 간에 물건을 빼돌린건 사실이었다. 각종 판례도 회사제품에 대한 노동자의 절도에 대해선 무지무지하게 엄격해서 달리 방법도 없었다.

어슴푸르게 떠오르는 이 기억 때문에 정몽구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더 비참해진다. 수백억원의 돈을 빼돌리고도 건재할수 있는 선택받은 국민과 몇천원짜리 물건을 빼돌려도 '앗'소리 한 번 하지 못하는 버림받은 국민으로 나누어 적용되는 이땅의 위대한 사법정의!

선택받은 국민의 권리와 버림받은 국민의 권리조차도 그 자식세대에게 고스란히 세습되는 봉건시대 부럽지 않은 이땅의 사법정의!

아아! 그래도 우리에게 절망만 있으란 법은 아니다. 희망도 있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말처럼 '만명에게만 평등한 법이 아니라 만인에게 평등한' 법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과 염원도 더 커져가고 있고, 사법부에 대한 비판과 감시의 칼날도 더 예리해지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같아도 지나보면 어느새 한발짝 나아가 있는 것이 역사 이고, 그 역사를 이루는 힘은 백성들의 갈망과 희망이랬다. 그래서 여전히 희망의 주인공은 오늘도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 농민 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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