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01.04 19: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만물이 고요히 잠든 새벽 몸단장을 하고 새벽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눈이 하얀 세상을 만들고 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한 눈을 보는 순간 순백의 향연에 초대받았다는 느낌이 든다. 황홀해 바라보고 있는데 눈이 말을 걸어온다. 내가 좋으면 교감을 나눠야지. 언제까지 나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 고마워 발을 내디디려는데 소복이 쌓인 눈 때문에 계단의 너비와 깊이가 가늠이 안된다. 밟는 순간 눈이 생채기가 날뿐더러 평화가 깨질 것 같다. 그리고 아파할 것 같다는 마음이 화살촉 같이 날아와 가슴에 박힌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조심스레 밟으니 뽀도독 소리와 함께 발을 포근히 감싸 안는다. 환영한다는 느낌이 들어 몇 발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신발 밑창 무늬까지 또렷하게 박혔다. 경이롭다. 작고 앙증맞아 보기에 밉지 않아 다음 걸음은 더 예쁜 발자국을 만들고 싶어 조심스레 한발 한발 일정하게 똑바로 걸었다. 발자국을 질서 정연하게 남기고 간다. 보기에 밉상이 아니라 기분이 좋아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누군가가 이 시간에 이 길을 걷는다면 틀림없이 신발이 젖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또 앞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걸으면 길을 찾는 두려움이 없어 필히 밟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좀 더 예쁜 자국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 내 삶의 흔적이 궁금해진다. 어떤 모양으로 박혀있으려나. 성경에는 마음으로 음욕만 품어도 죄로 인정한다고 했다. 이 우주 안에는 남에게 들킨 죄인과 들키지 않은 죄인이 공존해 살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후자인 들키지 않은 죄인임에는 틀림이 없다. 선한 양심 방은 비워놓고 온갖 탐심으로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면서도 때로는 청렴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치장한 적도 있을 테니까.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는 체 허세를 부리며 행동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그러니 내가 만든 길은 걷기 좋은 고즈넉한 오솔길도, 탁 트인 고속도로도 아닐 것이다. 나의 삶의 자국은 겅중겅중 띄엄띄엄 볼썽사나워 바라보기가 민망할 게 분명하다. 또 어느때는 꿈을 잃어 방황할 때의 모습은 바람결에 떠밀려 다니는 구름처럼 훨훨 떠다녔을 적에는 그나마 발자국도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살아온 모습을 눈 위에 남기고 가는 앙증맞고 예쁜 발자국을 기대하다니 상상만으로도 민망해 생각의 꼬리를 붙잡으려는데 쉽사리 잡히질 않는다.

누구나 나처럼 식견이 낮아 더 멀리 더 높이 바라볼 줄 모르고 자신의 잣대로 남을 판단하며 살아 놓고는 때론 왜 나에게만 이런 고난이 오느냐고, 왜 나에게만 이런 아픔이 반복되느냐고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적도 있었을 게 분명하다. 또 벼랑 위에 홀로 핀 꽃처럼 외로워 돕는 자를 찾기도 했겠지. 우리가 가는 인생길에는 동반자도, 이정표도, 연습도 없다. 힘겹다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오롯이 혼자서 자신의 지식과 지혜와 눈높이로 가야 하는 게 인생길임을 깨닫고 걸어온 발자취를 들여다보며 후회하겠지!

나는 여든 해의 고갯길을 힘겹게 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내 몫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어떤 몸짓으로 살았다 해도 실패한 인생이라 하지 않으련다. 지금처럼 하얀 눈 위에 다음 사람이 마음 편히 따라 걸을 수 있도록 똑바로 한발씩 내딛듯이 남은 날 수는 탐욕과 아집을 비우고 뒷사람이 편히 따라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보이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