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이유
존재의 이유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3.01.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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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방에 나란히 누웠다. 둘은 아무 말이 없다. 3개월의 터널 같은 여정이 끝이 날 줄 알았는데 또 연장된다. 무슨 병명이라도 나와야 속 시원할 텐데 오늘도 허탕이다. 그래야 안정이 되어 마음의 대처를 하련만 더 깊이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며칠 후 네 번째 검사를 앞두고 있다. 그이는 기다리다가 죽을 노릇이라 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피가 말랐다. 그 고통을 어찌 말로 다 하랴.

지난 구월에 함께 건강검진을 했다. 둘 다 이상 소견이 나와서 정밀 검사를 받기로 했다. 다행히 나는 CT만으로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 그런 말을 듣기까지의 한 달은 지옥이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없게 해주세요'의 간절한 기도가 `제발 우리 부부 너무 늦지만 않게 해주세요'로 절실해졌다. 설령 좋지 않은 상황이 올지라도 둘이 착실히 치료받겠노라고 희망을 담았다.

도시에 있는 병원에서의 검사도 명확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더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주저 없이 서울로 갔다. 여기에서 MRI까지 세 번의 검사에도 허사였다. 마지막으로 조직검사를 예약하고 돌아왔다.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지금까지 아파서 간 게 아니라 검진에서 발견되어 간 거니까 많이 악화된 상태는 아닐 거라고 믿기로 했다. 설령 좋지 않아도 치료받으면 된다고 담담한 척 말했다. 고치지 못하는 것이 병이고 고치는 건 병도 아니라고 위로했다. 너무 마음 졸이지 말고 담대해지라고 다독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 말도 나오질 않는다. 너무 지쳐 보이는 그이 옆에 말없이 누워있다.

둘이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들에게는 비밀로 했다. 미국에 놀러 간 것도 아닌 교수를 준비하는 과정의 박사후 연구원으로 가 있는 그다. 자기의 일도 벅찰 텐데 우리까지 더 보태고 싶지 않았다.

행여 마음이 쓰여 연구에 지장을 줄까 염려되어서다. 도움을 주지 못할지언정 방해꾼이 될 수 없었다. 눈치채지 않게 아무 일도 없는 듯 소식을 전했다. 아들도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제 안부를 전해왔다.

나에게 가족은 생각만으로도 뭉클하고 뜨겁다. 오미자 씨앗처럼 처음엔 시다가, 쓰다가, 나중에는 달은 관계다. 시다고 찡그리지 않고 쓰다고 뱉어버리지 않는, 모든 끝에는 단맛이 나는 가족이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미치앨봄이 이런 나를 흔든다. 가족은 그냥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이라고 항의한다. 내 생각이 짧았는지도 모른다. 이 또한 정답이 없긴 마찬가지다. 어쩌면 그건 아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 수도 있다. 기쁜 일이나 좋은 일만 나누는 게 가족은 아니다. 그는 슬픈 일, 나쁜 일들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가족이라고 일러준다.

이제 아들에게 비밀로 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동안의 과정을 들려주었다. 차분하고 신중히 듣는다. 내 말이 끝나자 지금까지의 수고를 치하했다. 그 한마디에 한 짐이던 어깨가 가벼워진다. 우리나라 의술이 좋아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안도가 된다. 괜찮다는 말이 이렇게 큰 위로의 말인 줄 처음 알았다. 뒤에 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아들과 통화를 하고 난 그이도 한결 편해진 얼굴이다. 그이와 나 그리고 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이름. 가족이었다. 힘들 때, 아플 때, 슬플 때 거기 서 있는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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