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밖 들여다보며
안과 밖 들여다보며
  • 전영순 문학평론가
  • 승인 2022.12.2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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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전영순 문학평론가
전영순 문학평론가

 

산타 할아버지가 소리소문없이 우리 동네를 다녀갔는지? 흔적 없는 하얀 길이 질퍽거린다. 덮인 세상이 하나둘 베일에서 드러나는 연말연시, 크고 작은 일들이 지나가고 다가오는 소중한 시간이다.

펼쳐진 세상에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없음”으로 기록될 공간이 내가 존재함으로써 “끝없음”으로 펼쳐진다. 초점을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바라볼까? 먼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바라볼까? 어디에서 바라보기를 하든 내가 중심에 놓인다.

먼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피부로 직접 와 닿지는 않지만,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할 큰 과제들이다. 반면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리 중대하지 않더라도 예민하게 다가오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처한 환경에 따라 개인차가 있겠지만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내외 정세보다 개인사가 내게 크게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1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전, 내년부터 고교생에게 소총과 수류탄 사용법 등 군사훈련을 가르쳐 전장에 내 보내려고 한다는 외신, `히잡 의문사'로 시작된 이란의 반정부 시위, 북한의 무인기 침범보다도 오늘은 딸의 출국이 나의 하루를 삼킨다. 어떤 일이든 현재 나와 얼마만큼 직접 영향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기정사실 앞에 오늘은 사회적 이슈보다 개인사가 날씨보다 춥게 다가온다. 주위의 따스한 보살핌이 음으로 양으로 필요한 계절이다.

떨어져 있던 딸과 오랜만에 한 달가량 동고동락했다. 지구의 저편, 혼자서 생활한 아이에게 위로가 되려고 마음먹었건만 한 달이란 기간이 모녀간의 거리를 무색하게 했다. 모녀란 인연은 정신적으로 가장 긴밀하게 주고받는 교감의 장이 아닌가.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할 수 있는, 허물없이 주고받는 사이, 불통이 통하는 사이가 바로 부모와 자식이 아니던가.

딸을 만나러 갔던 엄마의 시간, 가족이 그리워 찾아온 딸의 시간, 가족과 재회의 시간을 위해 오고 간 4일이란 시간을 제외하면 한 달은 한없이 짧았다. 2주간 머무는 동안 아이에게 엄마는 무엇을 했던가? 엄마란 이름으로 잔소리만 가방에 잔뜩 담아 보내놓고 의기소침해 있다. 아주 사사로운 일에도 민감해지는 사이와 관계. 가정이나 가족의 구성원이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시대,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칭찬보다는 잔소리해놓고 돌아서 가슴 아파하는, 천륜이란 인연의 끈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매서운 날씨에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러시아 국민도, 북한의 무인기도, 오늘은 내 딸에게 던진 잔소리보다 작게 다가오는 날이다. 별것도 아닌 것이 별것이 되는 것들, 검소하고 순수하기만 한 아이에게 “남들처럼 멋도 좀 내고, 약게 좀 살아라.”라고 한 것이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국제 정세보다도 따뜻한 가족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연말연시다. 날씨가 추워지니 서운하게 떠나 보낸 딸을 생각하니 마음 한 켠에 찬바람이 인다. 어느 가정이, 어느 가족이 불행해지기를 바라겠는가? 보살핌이 크든 작든 우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산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따뜻한 세상이 우리 곁에 가까이에 와 있을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니 엄마의 젖가슴처럼 따뜻한 아랫목이 그리워진다. 엄마가 엄마를 부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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