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겨울답게
겨울을 겨울답게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22.12.2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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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지난 밤 늦게 집을 나간 아내는 기나긴 겨울밤이 지나고 환하게 동이 튼 아침이 되어서야 돌아온다. 철야 노동의 모진 밤을 지내고 돌아온 아내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심장을 가진 사내는 없다.

`그대는 겨울을/ 겨울답게 살아보았는가/그대는 봄다운/ 봄을 맞이하여보았는가/ 겨울은 어떻게 피를 흘리고/ 동토(凍土)를 녹이던가 (중략)/보리는 왜 밟아줘야 더/ 팔팔하게 솟아나던가/ 잡초는 어떻게 뿌리를 박고/ 박토에서 군거(群居)하던가' -김남주의 시 `잿더미' 부분-

쉽게 눕지 못하고 무심하게 잠들지 못하는 핏빛의 눈으로 오래된 김남주의 시를 꺼내 읽는다. 그러한들 치미는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참을성을 여태 나는 기르지 못했고,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 역시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겨울은 춥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는 말은 해마다 새롭고 언제나 무겁다. 매년 강도를 높여 되풀이될 뿐이다.

아내가 새로 사준 방한화를 신고 나선 새벽길에서 나는 기억을 잃어버렸다. 2년 넘게 신은 낡은 운동화가 어디가 어떻게 불편했던가를 깡그리 잊게 할 만큼 새 신발은 따뜻했고, 눈길에도 쉽게 미끄러지지 않으며, 심지어 발뒤꿈치를 깨물던 옛 운동화의 상처도 느낄 수 없다.

모든 새로운 것은 지난 일을 잊게 하려는 `군림'의 힘으로 작동한다. 불편하며 부당하고, 모질기 그지없어 몸과 마음에 아픔 주던 것들을 그저 벗어나기에 급급한 `고난'으로 여길 때 상처는 치유되지 않는다. 다만 기억에서 지워버림으로써 `반성'을 허용하지 않는 `세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속임수를 위해 투입되는 노동의 대가(代價), 혹은 기다림의 고통과 무능한 자본의 능력까지, 따뜻하고 편안하며 미끄럽지 않은 새 신발은 쉽게 기억에서 지워 버린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가릴 것 없이 이렇게 되풀이되는 것이 결국 `역사'가 되는 셈인데, 쉽게 내다 버리는 낡은 운동화처럼 세상사 좋은 기억만 남기며 살 수 있는 길은 없다.

“내가 그린 세상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운 이성에 의해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아버지가 꿈꾼 세상에서 법률 제정이라는 공식을 빼버렸다. 교육의 수단을 이용해 누구나 고귀한 사람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소설가 조세희를 나는 노심초사, `염치(廉恥)'를 잃지 않는 세상을 위해 칼날 같은 문장을 지켜왔던 작가로 새기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났으니 남은 우리는 `난장이'가 여전히 넘쳐나는 세상의 `불구'를 한탄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굴뚝에 올라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둥근 달을 향한 `작은 공'의 희망을 추모해야 하는 것인지 여전히 분간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겨울이 겨울다워야 한다는 당연한 말이 모두에게 이해되지 않는 세상은 1978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발표된 이후 44년이 지나도록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땅에는 아직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부르는 악당'들이 득실득실하며, 냉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난히 더 가혹하다.

서기 2022년, 우리는 중대한 `전환'을 선택했다. 투표 용지에 기표를 하던 `순간'은 역사의 이름으로 길이 `기억'되어야 한다. 다만 그 `순간' `생각'이라는 것이 작용하기는 한 것인지, 했다면 그 `생각'이 얼마나 깊고 간절했으며 `역사'적이었는지를 따지는 것을 부질없는 짓으로 흘려 버릴 일은 아니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한 해가 찾아오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지난 세월을 후회하며 `지금/여기' 위험과 고통과 절망과 불안이 우리가 선택한 `겨울' 때문이라고 외면할 수도 없다.

미끄럽지 않고, 따뜻한데다 눈 녹은 물기조차 스며들지 않으며, 신는 순간 익숙할 만큼 편안한 새 신발도 언젠가는 낡아 버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나는 걷고 또 걸으며 무수한 `생각'을 할 것이다. 내 발걸음마다 내 생각도 다져지면서 깊어지기를, 여린 몸으로 공장에서 밤샘 노동하는 아내도 희망할 것으로 믿는다.

세상의 겨울에는, 그 처연한 눈밭에는 밟혀도 억울하지 않은, 그러나 결코 침묵하지 않는 보리싹이 남아 숨죽이며 푸른 봄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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