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45년 전 수준
선진국의 45년 전 수준
  • 박명식 기자
  • 승인 2022.12.20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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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윤석열 정부의 노동 정책 자문기구인 `미래노동시장 연구회'가 집중적인 근로를 가능하게 하되 총량 근로시간은 줄여나가는 노동제 권고안을 내놓았다.

권고안의 핵심 취지는 현행 근로기준법이 규정하고 있는 주당 최대 52시간 노동제를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늘리고 연장근로 시간을 일주일 단위가 아니라 월이나 분기, 길게는 연 단위까지 계산해서 탄력적으로 일한 뒤 몰아서 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에 있다.

권고안대로라면 아침 9시 출근해서 밤 10시까지 월·화·수·목·금·토 주6일 간 식사시간 빼고 11시간 30분씩 일하면 딱 69시간이다. 이렇게 집중적으로 일하고 나서 한 주는 푹 쉬자는 얘기다.

다만 연구회는 노동자가 무리하게 일을 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연장근로 시간 관리 단위를 분기(3개월) 90%, 반기(6개월) 80%, 연(12개월) 70% 등 비례적으로 줄이는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쉽게 설명하면 3개월 단위로 연장근로 시간을 관리한다고 했을 때 52시간의 3배인 156시간을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90%인 140시간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직장 문화에서 권고안대로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휴가를 즐길 수 있을지는 물음표다. 아마도 대한민국에 어떤 이유로도 이 같은 유도리를 발휘할 수 있는 직장은 거의 없다.

이번 노동제 권고안을 내놓은 미래노동시장 연구회 구성원 12명은 모두 정부가 임명한 교수들이다. 이 교수들은 중립적으로 연구를 했다고 강조하지만 대한민국의 직장 섭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권고안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던질 수밖에 없다.

직장이라는 곳은 사내 정치라는 것도 있고 눈칫밥이라는 것도 있다. 직원 평판이라는 것도 있다. 뭘 어떻게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쉴 수 있다는 것인지! 그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자체가 너무도 현실감이 떨어져 보인다.

하물며 직장 일이라는 것은 교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녹록지가 않다.

설령 열심히 몰아 일한 대가로 몰아서 쉬는 주가 생겼다고 쳐도 그 주에 직장에서 해결해야 할 일의 물량이 잔뜩 터져 나온다면? 과연 직장 눈치 안보고 맘 편히 쉴 수 있을지, 과연 회사 사장이나 상사가 편히 쉴 수 있게 마냥 내버려 둘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은 안 해 봤는지 묻고 싶다.

물론 권고안에는 근로일, 출·퇴근 시간에 대한 근로자의 선택을 확대하는 내용과 현재 임금 체계를 호봉제에서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내용 등의 환영받을 만한 부분도 있다. 이번 권고안을 놓고 노동계와 경영계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노동계는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 재량권을 확대시켜 과거 장시간 노동 체계로 돌아갈 것을 우려하는 등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노사의 자율적인 선택권을 보장한 근로시간제도 개선방안 도입에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은 OECD 38개국 중 5번째로 길고 평균보다 200시간 더 일 한다. 이는 선진국의 45년 전 수준이다. 과연 이번 권고안이 전 세계 10위권 경제국임을 자랑하고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왈가불가해야할 일에 부합하는지부터가 의문이다.

어쨌거나 필자도 이번 권고안에 대해 “52시간도 힘든데 웃음만 나온다”, “과연 직장에서 마음 편하게 휴가를 챙겨줄까?”에 대한 의견과 반문에 공감의 한 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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